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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ug 26. 2022

6. 완벽한 이방인, 완벽한 해방감

곽미성, 다른 삶

한편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압도적인 자유이기도 하다. 누구도 나를 모른다는 것은,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곽미성, <다른 삶>, 84p


이방인 생활은 양면성이 명확하다. 설움과 자유. 외로움과 해방감. 어떤 것이 더 무거운지는 시시때때로 변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자유와 해방감 쪽이 더 컸던 것 같다. 우선 모국어에서 해방됐다. '모국어'와 '해방'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시끄럽고 예의 없는 모국어가 나를 공격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가끔 하지 않나? 공공장소에서는 특히 그렇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의 이유>에서 적었던 문장들을 떠올려 보자.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모국어가 때로 나를 할퀴고, 상처 내고, 고문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아무런 말도 알아듣지 못한 채 한 톨의 먼지처럼 내 조국이 아닌 어딘가에 앉아 있는 기분은 꽤 그럴싸하다.


열아홉에 프랑스에 당도한 <다른 삶>의 저자는 이후 이십 년 동안 그곳에서 거주했다. 외모 차이가 확연한 서양인 데다 프랑스인 남편을 만났으니, 그녀의 이방인 지수는 나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강렬한 고독과 강렬한 자유 속을 유영하는 그녀의 문장에 공감했다.


중력을 거스르는 압도적인 자유에서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 수 있게 된다는 고백. 직접 마주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설움과 자유 사이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황홀한 고통'. 특별한 경조사가 없는 이방인의 백지 같은 삶을 독립적으로 채색해나가겠다는 의지. 


파리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그녀에게 종종 연락해서 '그립다'라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그리운 건 파리도, 자신도 아닐 것이라고. 그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해방감'이 그리운 것이라고. 


여행을 싫어하던 포르투갈 시인 페수아는 <불안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안에 자유가 없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이방인이라는 신분이 완벽한 자유와 해방감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찰나 속에서 완벽한 자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살아가며 그런 해방감을 한 번쯤은 다시 맛볼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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