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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Sep 19. 2022

7. 훠궈 예찬

내가 사랑하는 빨강


기쁠 때의 훠궈야 무한한 기쁨이지만 슬플 때의 훠궈도 나는 좋다. 슬픔은 수용성이라고 하듯 훠궈 냄비 속에 나의 고독, 나의 미련, 내가 하지 못한 말, 하지 않은 것, 나의 스트레스, 나의 분노까지 밀어 넣는다. 냄비에 넣고 보글보글 끓이고 나면 그것들은 어느새 기화되어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훠궈는 좋다, 언제나.


허윤선, <훠궈: 내가 사랑하는 빨강>, 161p


베이징에서 먹었던 매주 한 번의 훠궈는 나를 꽤 많이 위로했다. 새빨간 훠궈 냄비 속에 이방인의 외로움, 마흔의 걱정과 불안함을 밀어 넣고 그것들이 보글보글 끓어서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 마셨더랬다.


토마토 탕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또 어떤가. 평소에 토마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입맛인지라 아무 기대도 없이 후루룩 삼켰던 토마토 육수는 위가 아니라 내 마음에 곧바로 닿았다.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를 비로소 발견한 기분이었다.


토마토 훠궈를 묘사하는 허 작가의 말을 빌려보면 '미네스트로네 같은 토마토 수프를 떠올리면 된다. 붉고 묽은 토마토 탕은 달착지근하면서도 특유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있다. 해장 거리를 찾는 술꾼도, 유치원 다니는 꼬마도 좋아할 맛'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 엄마도, 나의 아이도, 마라 육수만 좋아하는 내 절친도 토마토 탕을 한 번 맛보고 나면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졌다. 마라 육수가 여전히 최애이지만 그 옆에 토마토 육수가 없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소스는 언제나 두 개를 준비한다. 마라 훠궈에 어울리는 고소한 마장 소스와 토마토 탕에 어울리는 매콤한 간장 소스. 마장 소스의 핵심은 간마늘과 참기름, 약간의 로깐마유. 간장소스의 핵심은 청양 고추다. 맛을 열 배로 끌어올려 주는 샹차이 또한 듬뿍듬뿍 넣어준다.


몇 번의 잊을 수 없는 훠궈가 있다. 친한 친구들과 캠핑 가서 먹었던 야외 훠궈. 고기와 훠궈 육수 재료는 함께 사고 각자 좋아하는 훠궈 재료를 세 가지씩 가지고 왔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완자, 언두부, 각종 버섯, 죽순, 중국식 넓은 당면, 와와차이(작은 양배추), 청경채 등이 훠궈 냄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백주는 당연한 옵션. 좋은 벗들과 아무렇게나 서서 충칭식 훠궈를 먹으며 백주를 짠하던 때의 기쁨이란. 시원한 가을바람에서 진동하던 마라 훠궈의 진한 향과 깔깔거리던 친구들의 웃음은 잊을 수 없는 한 장의 추억이 되었다.


'혼훠'는 또 어떤가. 중국인들 사이에서 혼자 바 테이블에 앉아 훠궈를 먹고 있자면 스스로가 조금 기특해졌다. 혼밥을 가장 어려워하던 예전의 내가 한없이 귀엽게 느껴졌달까. 그렇게 나는 아무런 수다도 필요 없는 완벽한 한 끼를 완성해갔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이 떡볶이에서 훠궈로 변하면서 내 삶의 궤적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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