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루이 Oct 08. 2022

8. 연길냉면과 꿔바로우

천샤오칭, 궁극의 맛은 사람 사이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냉면을 먹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은 여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냉면이 가장 중독성 있게 느껴지는 계절은 겨울, 그중에서도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밤이다. 하루는 냉면을 먹고 학교로 돌아가는데 찬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던 것은 꼭 찬바람 때문만이 아니었다. 매콤하고 시큼한 육수의 자극이 불러일으키는 기묘한 감각 때문이기도 했다.


천샤오칭, 궁극의 맛은 사람 사이에 있다, 99p


한국에서 오랫동안 함흥냉면이냐, 평양냉면이냐를 싸워왔지만 사실 나는 연길(延吉) 냉면파였다는 것을 '삼천 냉면'을 먹고 알게 됐다. 뼛 속까지 시리게 하는 깔끔한 국물과 인생 꿔바로우를 함께 입에 물고 있자면 그곳이 천국 같았다. '냉면과 탕수육이 왠 말이야?'라는 첫 생각이 무안할 만큼 시원한 냉면과 쫄깃한 꿔바로우는 또우장(豆浆)과 요티아오(油条)만큼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냉면 한 그릇에 22위안. 저렴한 가격은 또 어떤가.


중국 상무부가 선정한 중국 10대 면 요리에도 들어갈 만큼 유명한 연길 냉면은 한국식 물냉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연길 냉면의 특색은 다양한 고명, 그중 특히 양배추 김치인데, 이 김치가 새콤달콤한 육수에 매콤한 맛까지 가미한다. (연변의 냉면 전문점에 가면 양념장을 듬뿍 넣은 양배추 김치 고명을 ‘冷面帽(냉면 모자)’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참 귀여운 이름이다.)


하지만 연길 냉면을 완성하는 주인공은 ‘꿔바로우(锅包肉)’다. 한국에서 종종 그냥 탕수육이 아닌 ‘찹쌀 탕수육=꿔바로우’를 먹었지만 밋밋한 반응을 보여왔던 나에게 삼천 냉면의 꿔바로우는 그야말로 신세계. 촉촉하면서도 바삭하고 달콤하면서도 새콤하다. 돼지고기 안심에 옥수수 전분을 고루 묻혀 약불에 오래 튀겨 고기를 익히고, 센 불에 빠르게 다시 튀기는 꿔바로우는 튀기는 기술이 매우 필요한 요리라고 한다. 삼천 냉면의 꿔바로우를 처음 맛봤을 때 나는 작은 주방을 다시 힐끔 쳐다봤다. 무심하게 웍을 흔들고 있던 젊은이에게 존경심이 솟구치던 순간.


꿔바로우는 청나라 광서 황제 시기에 하얼빈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하얼빈은 러시아와 교류가 많았고, 하얼빈 관내 요리사가 러시아인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해서 나온 것이 바로 꿔바로우. 센 불에 폭발하듯 튀겨낸다고 하여 폭발이라는 뜻의 ''를 넣어 '锅肉'라고 썼으나 러시아인들이 '빠오' 발음을 잘 하지 못해 '锅包肉'라고 불리게 됐다고.


천샤오칭의 말처럼 겨울에도 냉면은 어울린다. 무엇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여름 점심시간이면 1-2시간 정도의 엄청난 대기 시간을 각오해야 하니까. ‘겉바속촉’의 대명사인 꿔바로우(锅包肉)를 새콤달콤한 냉면 국물에 찍어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는다. 딱 이만큼만 인생이 새콤달콤하고 쫄깃했으면 좋겠다./



---

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7. 훠궈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