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

by 심루이

워킹맘으로 일하던 시절 제일 설렌 시간은 오후 5시였는데

아이가 하원하는 그 시간이면 엄마가 매일 사진들을 보내 주었기 때문이다.

시계 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전화기 진동이 드르륵드르륵 여러 번 울리면 5시가 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집 앞 광장- 놀이터- 마트로 이어지는 매일이 비슷한 일상 속에서 매일 비슷한 너 다섯 개의 사진, 동영상 꾸러미를 엄마는 하루도 쉬지 않고 보냈다.

때로 너무 바빠서 퇴근 전까지 제대로 확인을 못하던 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입을 귀 뒤에 걸고 내가 없는 공간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일하면서 엄마는 아이가 얼마나 궁금할까, 하는 할머니의 배려심에 감사한 날들이었다.

오후 5시가 아닌 다른 시간에 사진과 동영상이 오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은 어린이집 야외 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심이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넘치는 다정한 할머니는 심이가 야외 활동을 나가는 날이면 어린이집 주변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심이를 찍었다. 안 그래도 사진 찍을 때 좀 흔들리는 습관이 있는 데다,몰래 숨어서 찍어야 하니 그 사진들은 때때로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게 도착했다. 나는 어딘가에서 잘 숨겨지지 않는 몸을 숨기고 그 영상을 찍었을 엄마 생각에 킥킥거렸다.


신기하게 많이 흔들렸어도 늘 내 아이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친한 단짝의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신나게 걸어가는 모습을 훔쳐보는 일은 생각보다 즐겁고, 묘한 일이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에는 저렇게 걷고, 저렇게 웃는구나. 4살이었던 아이의 미래를 바라보는 기분도 들었다.

할머니의 훔쳐보기는 종종 들통이 나곤 했는데, 다른 친구들이 심이보다 할머니를 먼저 발견해 “은재 할머니다~ 저기 은재 할머니다!”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영상을 통해 보는 아이들의 모습과 목소리는 보물섬에서 보물을 한가득 찾은 사람들처럼 신나 보였다. 그럴 때면 당황한 할머니의 영상은 절대 만나 주지 않는 제보자를 찾아간 다큐멘터리처럼 17초 무렵부터 땅이나 하늘만 내내 비춰주곤 했는데, 그 영상은 고스란히 날것의 모습으로 내 사무실에 도착하곤 했다.

엄마의 성실함을 입증하듯, 수천장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우리의 한시절은 끝이 났다.


심이가 중국에서 아팠던 5월, 병원으로 바로 가기 위해 2주 동안 유치원 앞으로 심이를 데리러 갔다. 친구들과 함께 재잘거리며 버스를 기다리는 심이를 나무나 트럭 뒤에서 숨어서 바라봤다. 버스에 타기 직전, 짜잔 하고 심이 앞으로 가면 내 기대와는 다르게 심이는 늘 나를 반기기는커녕, 병원에 가기 싫어서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하루는 내가 온 줄 알면서도 친구 뒤에 꼭 숨어 버스를 몰래 타려고 하기도 했다.

먼 발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본 유치원 상담이 있었던 어느 날에는 아이의 그 모습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주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도 했다.

늘 아기 같은 내 아이가 내가 없는 세상에 오롯이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흥분되는 동시에 짠한 일이구나, 그때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언젠가 훌쩍 나이를 먹어 내가 아무리 찾으려고 노력해도 잘 찾아지지 않는 날이 오겠지. 모든 부모의 숙명처럼 나의 연락이 지나친 참견일까 조심스럽고 너의 연락이 참으로 기다려지고, 반가운 날이 오겠지.


이제 나는 그때의 엄마처럼 매일 심이의 사진을 보낸다. 우리는 아주 멀리 있지만 동시에 아주 가까이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