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by 심루이

유년 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면 할머니의 두 눈은 늘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휴일이나 연휴 기간, 우리 가족이 잠시 할머니 댁에서 머물고 떠날 무렵이면

할머니는 늘 차에 타는 우리를 큰 길까지 나와 배웅해주시곤 했는데 그때 할머니의 눈이 그랬다.

차창으로 비치는 할머니의 두 눈, 사이드미러에서 점차 작아지는 할머니의 모습. 유난히 감성적이고 눈물이 많던 나는 할머니의 눈만 봐도 눈물이 찔끔 나곤 했었다. 그 눈물에 담긴 그리움이나 사랑의 깊이를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랬다.

부산에서 서울로 완전히 올라오던 12살 무렵의 그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남인 아빠는 자식을 위해서 부산에 홀로 할머니를 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떠나는 길 위, 운전을 하면서 눈물을 계속 훔치던 아빠.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첫 번째 눈물이다.

서울에 온 이후로는 일 년에 2-3번만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의 순탄하지 않았던 생에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똑똑했던 아빠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때 부산에서 일등을 하기도 했다는 아빠는 식구의 생계를 위해 일찍이 공부를 중단하고 은행에 취직했다. 명절 제사가 끝나고 아빠가 깊은 낮잠에 빠진 시간이면 할머니는 자신의 장남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그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하시곤 했다.


그때 할머니의 두 눈가는 다시 촉촉해졌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결핍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매일 물로만 배를 채우던 그 시절 아빠의 이야기가 너무 생경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 눈알을 굴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번 듣던 이야기를 새로 듣는 것처럼 듣는 일, 그뿐이었다.

부산에 홀로 계신 할머니는 아빠의 오랜 부채처럼,그렇게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 상처를 잊고 싶다는 듯 더 열심히 살았다. 모든 것에 엄격하고 비판적이었던 아빠를 우리 남매는 종종 이해하지 못했지만, 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던 아빠를, 늘 무뚝뚝한 말투로 하지만 매일 아침 할머니의 안부를 전화로 묻던 아빠의 진한 그리움은 안다.

인생은 돌고 돌아, 나는 베이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할머니의 마지막을 전해 들었다.

왕 할머니가 돌아가셨대,라고 말하는 내게 어디로 돌아가셨어?라고 묻는 심이와 비행기를 탔다.


대학 입학 때였나, 생활비를 아껴서 모은 적지 않은 용돈과 함께 주셨던 편지가 기억이 났다. 삐뚤빼뚤한 그렇지만 정성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로 완성된 짧은 편지. 그 편지가 할머니의 인생과 닮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90년이라는 시간을 힘겹게 살아온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작고, 고왔다.

매일 자식과 손주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 이곳에서 우리가 더 그리워할 시간.

부디 편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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