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루이 Nov 09. 2022

예민함 사용설명서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예민하게 발견하는 삶

나를 오래 봐 온 회사 선배는 나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예민하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서 사실 좀 얼떨떨했다.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바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까칠하게 굴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살짝 부인해 봤다.


- 저 정말 덤벙대잖아요, 예민보다는 털털에 가까울걸요?


선배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민함을 까칠하다고 받아들이더라. 히스테릭한 예민함 말고, 앞사람 슬프고 힘든 거 잘 알아주고, 서비스의 사소한 변화도 잘 알아채고, 상관없어 보이는 거 잘 엮는 그런 예민함 있잖아. 작은 것에서 큰걸, 평범함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하고, 뭐 그런 능력.


아, 그런 예민함도 있었지. 그렇다면 나는 예민한 사람이 맞다.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은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기술이니까.


국어사전도 '예민하다'라는 형용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민하다는 단어가 다소 과소평가되고 있지는 않은가? 나라도 이 단어를 사랑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런 글을 읽었다. 류시화 시인이 SNS에 올린 글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는 불행한 것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행복한 것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싫어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부여받은 예민함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위대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자기 주위에 벽을 쌓는 쪽으로 그 재능이 쓰여선 안 된다.


유레카! 우리가 부여받은 예민함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관한 명쾌한 생각이다. 싫어하는 것을 찾고, 나쁜 것을 지적할 때가 아닌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위대한 것을 발견하는데 쓰면 된다. 


기록하려는 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감각이 바로 ‘예민함’이다. 영감은 엄청난 것을 발견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것을 다르게 읽는 그 순간에 우리를 찾아온다. 그러니 나만의 영감 노트에 남부끄러운 사소한 순간들을 조금씩 쌓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 다른 내가 되어있다. 


나는 정여울 작가가 묘사한 아주 예민한 마흔이 되기로 했다.  


-사회생활에 무난히 적응하기엔 참 어려운 성격이지만, 글을 쓸 때는 이 과도한 예민함이 무궁무진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남들이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장면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그 안에서 반드시 의미의 진주를 캐내는 이 창조적인 집착이야말로 나의 글쓰기 비결이다. 나는 집착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예민하다. 고로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의 폭발로 매일 끙끙 앓는다. 그래서 비로소 나답게 살 수가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도 '차이'를 발견해낸다.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삶을 권태로부터 지켜준다. '매일 글 쓰고, 매일 책 읽는 게 너는 지루하고 힘들지도 않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제대로 예민한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모든 책이, 모든 글이, 모든 순간이, 미치도록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흔에 대하여> 중


나이 마흔에 새로 만난 ‘예민’이라는 단어. 오늘 하루도 스스로 설계한 시간 속에서 나의 예민함을 신나게 사용하고, 기록해야지. 


--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정답을 알려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