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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08. 2022

인생의 정답을 알려줘

아이들의 부지런한 사랑 

‘이건 내 인생 누들이야, 인생 옷이야, 인생 책이야’를 남발하던 여섯 살의 아이에게 “인생이 뭔지 알아?”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살아 있는 마음… 뭐 그런 거 아니야?


편지 쓰는 게 좋아서 우체부 아저씨가 되고 싶다던 일곱 살의 아이는 아빠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아빠가 좋아! 아빠 심장에는 진짜 행복이 있어. 


중국어 단어가 잘 안 외워진다고 토로하는 내게 여덟 살의 아이는 “열 번씩 쓰고, 열 번씩 읽어”라고 시크하게 제안했다. 


다툼이 있었던 친구 둘이 서로 화해했다길래 어떻게 화해했는지 아홉 살의 아이에게 물었더니 “특별한 게 있어? 그냥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는 거지”라고 했다. 순간 너무 명료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매일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느라 잠자는 시간도 부족한 요즘의 아이에게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신나서 피곤할 틈이 없어.”라고 대답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살짝 질 뻔했다. 


70점을 두 번 연속 맞은 아이에게 “수학 왜 이렇게 많이 틀렸어?”라고 물었더니 “20점은 계산 실수 때문에 틀렸어. 근데 실수도 실력이지? 그게 내 실력이야.”라고 쿨하게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메신저 프로필 소개를 '눈치를 보지 마라!'라고 바꿔뒀길래 "무슨 눈치를 봐?"라고 물었더니 "누구긴 누구야, 세상의 눈치지"라고 했다. 


아이를 키워보니 가끔 아이는 세상의 어마어마한 진리를 다 아는 것처럼 보였다. 실은 모든 아이가 태어날 때 세상의 진리나 정답들을 마음에 품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번잡스러운 세상 속에 자라면서 혹시 그것을 하나씩 잊어버리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정답이 궁금하다면 어른이 아이에게 묻거나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세상을 꾸려나간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지는 않을 텐데. 나는 심이를 키우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에 나오는 아이들의 빛나는 문장들을 봐도 그렇다. 아이들은 슬아 선생님의 글방에 와서 얼른 쓰고 뛰쳐나가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욕망을 참으며 이런 문장들을 썼다. 나는 그렇게 급하게 쓰인 아이들의 문장을 아이와 함께 읽다가 웃고 울었다. 또래 친구들이 쓴 글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이의 집중력이 세 배는 더 높아졌으며 나는 아이들의 표현력에 감탄만 나왔다. 


열 살 최가희의 문장이다.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을 안다. 

열세 살 이형원은 이런 문장을 썼다. 읽으며 나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아홉 살 제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주제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김서현이 스스로에게 쓴 편지에도 빛나는 문장이 숨어 있다. 성적 그 따위가 뭐라고 널 울리겠어. 나는 '성적' 부분에 사랑, 질투, 꿈, 돈 등 단어를 바꿔서 넣어보았다. 사랑 그 따위가 뭐라고, 질투 그 따위가 뭐라고, 꿈 그 따위가 뭐라고. 

나도 어릴 때 이런 두 살 많은 형을 만났더라면 인생이 더 쉬웠을 텐데.  

저항할까 봐 무서워서 이 부분은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빠의 영혼이 찬물에 적셔진 것처럼 놀랐다… 라니 조이한이란 친구의 앞날이 기대됐다. 

조이한의 탄생신화는 나와 아이를 한참 웃겼다. 특히 “가라! 너희 엄마 뱃속으로!” 이 부분. 

나는 조이한의 탄생설화를 읽으며 확신했다. “가라! 너희 엄마 뱃속으로!”라고 신이 그들에게 이야기할 때 어떤 정답지를 두 손에 몰래 쥐여줬음이 분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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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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