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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0. 2022

각자의 애도법

아빠의 밑줄

다독가인 아빠가 읽던 책을 빌려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안에 아빠의 밑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가 밑줄 친 문장은 꼭 두세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이 무수한 문장 중에 이것이 아빠를 건드린 건 왜일까 고민하면서. 아빠가 살짝 접어둔 페이지와 책을 덮으며 마지막 장에 기록한 날짜 또한 뇌리에 남겼다. 


아빠의 책장에는 아직 내가 읽지 않은 책이 많고 많으니 언젠가는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빠의 육체가 떠나도 그의 밑줄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그 문장을 읽는 것이 먼 훗날 나만의 애도법이 될 것이다.  


지난해 갑자기 아빠를 보낸 친구는 요즘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클래식 곡들을 새롭게 듣고 있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서 베토벤 교향곡을 듣고 있을 친구의 모습을 종종 떠올린다.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그녀에게 참 걸맞은 애도의 방식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서점 <시티라이트>에서 일하는 스테이시 루이스는 언젠가 젊은 여성에게 조금 오싹한 편지를 받았다. 아버지가 생전에 제일 좋아하던 이 서점 시 코너 갈라진 틈새 곳곳에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유골을 뿌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거기 계신다는 생각에 지금도 위로받고 있다고 했다. 


친한 친구의 부모님 장례식에 다녀온 다음 날, 심이와 둘이 코인 노래방에서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목놓아 불렀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매번 부르던 노래인데 이 문장이 이렇게 슬플 일인가. 


마스크 사이로 눈물이 비처럼 주룩주룩 내렸다. '좋은 이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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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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