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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15. 2022

이런 마음이 여기에 있어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삶의 순간들

세상에 용기가 필요한 일은 널렸지만 요즘 내가 용기를 짜내어 하는 일은 마음을 꺼내는 일이다. 내 안에 있는 마음을 그저 꺼내면 되는데 왜 용기가 필요한가 싶지만 정말 그렇다. 특히 낯선 이에게 마음을 꺼내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와 연습이 필요하다.


맛있구나, 좋구나, 친절하시네요, 인상적이에요. 마음 속에서 맴돌던 칭찬을 꺼내는 일을 쑥스러워했었다. 내가 용기 내어 꺼낸 그 작은 마음을 베어 먹으며 누군가는 며칠을, 혹은 몇 달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 역시 그랬으므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그런 작은 칭찬과 관심이었다. 가끔 아주 낯선 이에게서 튀어 나와 무방비 상태의 내게 불쑥 닿는 마음들. 뜨거운 프라이팬에 닿은 버터처럼 나의 딱딱한 고민과 고뇌를 순식간에 녹여주는 다정들. 김신지 작가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 이렇게 적었다. 사정도 모른 채 쉽게 하는 충고는 잊고, 듣는 순간 우리를 조금쯤 쑥스러워지게 했던 그 좋은 말들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 좋은 말들을 닮아보라고. 그러니 그 마음은 그저 나를 따뜻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나아가게 한다. 


박소연 작가의 소설 <재능의 불시착>에도 고객의 따뜻한 댓글에 주방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줌마 사장님이 나온다. 씩씩한 그녀는 하루 아침에 장애인이 된 남편 재활을 도왔던 일 년 동안에도, 첫 장사를 하며 맵디 매운 악플을 보면서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녀를 아이처럼 엉엉 울린 건 닉네임 ‘달리는 배추 잎사귀’의 별 것 아닌 댓글이었다. '이 집은 찐입니다. 국물이 그냥 후루룩 끓여서 나온 수준이 아니에요. 뭐죠? 이 깊은 맛은? 제 리뷰 보시면 무조건 시키세요. 열 번 시키세요', ‘진짜 여기 먹다가 다른 데 시키면 현타 올 듯. 저랑 아무 관계도 없는 사장님, 계속 시켜 먹게 오래오래 장사하십쇼!’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고 마주쳤을지 모를 몇 개의 문장에 그녀와 남편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몽글몽글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 작가도 고백했다. 블로그 방문자가 하루에 한 두명이던 그 시절에도 내가 쓴 글을 유심히, 주의 깊게, 오랫동안 읽어주는 사람들이 청춘의 가느다란 자존감의 끈이 되어주었다고.


미국 작가 윌리엄 아서 워드는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포장해 두고는 주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다. 포장한 선물을 주지 않고 귀가해 버린다면 당신의 가방은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금 내가 내미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빛, 자존감, 혹은 지쳐서 그만둬버리지 않을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쑥스럽다고, 상대방의 반응이 두렵다고 덮어두지 말고 매일 아침 오늘 하루만큼의 용기를 찾아서 내 안에 담고, 하루를 버티고, 마음을 나누자. 작은 용기로 위대한 일을 하자. 


이런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몽글몽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이 발걸음에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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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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