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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0. 2022

엄마의 빈틈과 재미있게 살기

매일 반성하는 엄마

-엄마, 지갑, 핸드폰, 마스크 챙겼어?


하도 깜빡했더니 외출하기 전에 열 살 딸이 늘 내게 하는 질문이다. 볼펜 뚜껑을 닫지 않고 정신없이 책을 읽던 내게 다가온 아이가 "엄마! 볼펜 뚜껑을 왜 또 안 닫았어? 펜이 빨리 닳는단 말이야"라고 구박을 하며 볼펜 뚜껑을 닫는다. 펜 뚜껑과 볼펜 수명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는데...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철이 없는 엄마는 할 말이 없다.


학교 준비물이나 병원 약을 깜빡해서 아이에게 주지 않거나 아이 운동복 빨래 시기를 놓치는 것은 애교인데 얼마 전에는 방과  공개 수업 시간을 착각했다.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이라며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라는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의 말씀에 기대서 나의 빈틈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왔는데 스스로 빨간 불을 켰다.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고 해서 한껏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를 챙겨주는 야무진 딸이 생겨서 나의 빈틈이  커지는 이런 시나리오는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진정한 사과만이 구원이니 엄마가 공개 수업에 오지 않아 속상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는 클리셰적 믿음은 필히 수정돼야 한다. 만약 그랬다면  세상에  어른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야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저 공감했던 장수연 작가(<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저자) 문장은 이것이었다.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기회가  많이 열린다.


확실히 그렇다. 엄마가  이후  년이라는 시간 동안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아도  , 하지 않았을 일들을 줄곧 하며 살아왔다. 때로 부끄럽고 낯간지러운 일들을 해내며 나는 확실히 성숙하고 성장했다.


덜렁대는 엄마에게는 어른이  기회와 더불어 반성할 기회도 많이 열린다.  년째 매일 사소하게 반성 중인 내가 증거다. 반성해야  항목들을 모두 적었다면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시리즈 수준의 양이 되었을 텐데 다행히 그러진 못했다. 나의 반성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영혼을 갉아먹는 자책은 멀리 한다. 반성과 자책은 엄연히 구분되야 한다. 자책은 과거에 치우쳐 있지만 반성은 미래에 나아가 있다고 믿는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그저 반성할 뿐이다. 앞으로도 3 간격으로 새롭게 결심하고 매일 열심히 반성하며 어제의 나와 경쟁하며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의 엄마' 사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완벽한 부모는 재앙이라는 하지현 박사님의 말은 계속 명심하고 싶다.(명심하지 않아도 완벽한 엄마가 될 확률은 희박하지만) "아이에게 가장 좋은 롤 모델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재미있게 사는 부모의 모습이다. 자기 인생이 재미있어지면 아이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고, 빈틈 중에서도 ‘엄마로서의 빈틈’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재미있게 사는 것으로 엄마로서의 빈틈을 메꿀 수 있다니 무척이나 희망적이다. 그것만큼은 자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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