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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5. 2022

없는 미래

현재에 진력을!

미래는 중학교 같은 반 친구 이름이었다. 그저 그 정도였다. 과거의 반대이자, 다가오는 시간인 '미래'는 없어야만 마땅했다. 미래는 그저 내일의 오늘 일뿐이니, 나는 오늘만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몽상가였던 나는 누구보다 미래를 꿈꾸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어른이 되면, 돈이 생기면, 시간이 생기면 류의 상상을 많이 했다. 막상 그 미래에 가보니 별게 없었다. 미리 가본 선배들도 별게 없다고 했다. 그냥 그날도 비슷한 하루일 뿐이어서 장기 계획을 세웠던 과거의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그 즈음 내 엽서의 마지막에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믿음으로 살자'라는 문장이 적혔다. 


존스 홉킨스 대의 창립자 윌리엄 오슬러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오늘의 삶에 충실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했다. 어제와 내일이 연결되지 않는 오늘을 위한 두꺼운 철문을 치자는 것이다. 버튼을 눌러 차단벽이 잘 작동하는지 귀 기울여 보라고도 했다. '죽어버린 과거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완벽하게 단절해야 오늘의 우리가 안전하다'라는 주장이다. 생존을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안전이니 버튼을 누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미래의 내가 자꾸 철문을 두드리면, 소리를 지른다. 반가운 미래의 나야.... 안녕~~~ 근데 네 말 하나도 안 들려. 


먼 훗날 살고 싶은 삶,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김민정 시인이 찰떡같은 문장을 썼다. '미래라는 시간을 생각해야 할 사람은 그 미래라는 시간을 살아갈 미래의 나이지 지금의 나는 아니'라고. 떳떳하게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무책임이란 이런 것이다. 


큰 성공 말고 작은 성취들을 모을 수 있도록 목표와 계획은 아주 짧게 잡는다. 탁월하고 신선한 일을 딱 한 개만 시도하는 오늘은 어떤가? 앞으로 30분, 몰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몸으로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떤가? 몰입하는 자의 시간에는 과거의 친구인 불만이나 미래의 세트인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다. ‘지금, 이곳’ 정신으로 집중해서 순간의 질을 끌어올리다 보면 더 괜찮은 오늘에 당도해 있을 것이다. 


다짐이 희미해지면 잘생긴 아저씨를 생각하자.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오늘은 힘이 세다.


이것은 감자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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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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