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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6. 2022

꿈을 먹는 엉터리 마법사

슈슈슉슈슉

-엄마, 내 꿈 좀 뺏어서 먹어줘. 


심이가 자기 전에 매일 내게 하는 말이다. 몇 번의 악몽을 경험한 후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루틴이다. 나는 심이 엄마이자, 친구이자, 라이벌이지만 이때만큼은 마법사가 된다. 사명감과 진지함으로 무장한 채 심이 얼굴 바로 앞에서 한 손을 크게 벌렸다가 오므리면서 진공청소기와 비슷한 이상한 소리를 낸다. 슈슈슉슈슉. 아이에게 빼낸 꿈을 담은 주먹을 고스란히 가져와 입을 벌리고 꿀꺽 삼킨다. 엄마가 꿈을 다 먹었어, 꿈 안 꿀 수 있을 거야. 얼른 푹 자자. 그럴 때면 공기에서 산뜻한 박하향이 난다. 


밖에 있다면 전화로, 혹은 영상으로 나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심이의 꿈을 먹는다. 아이의 불안이 높은 날에는 두 번 먹는다. 그런 나를 보는 아이의 얼굴에 비로소 평화가 깃든다. 자신의 꿈을 다른 이에게 전해줄 수 있다고 믿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나는 그렇게 한참 품고 있다. 왠지 모르게 배가 부르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가끔 귀찮기도 하지만 아이가 더 이상 꿈을 먹어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면 이 허무맹랑한 하루의 마무리가 무척이나 그리울 것이다. 박하 향도, 슈슈슉슈슉도, 침 냄새와 살 냄새가 동시에 나는 심이의 귀여운 볼따구니도. 


이렇게 열심히 꿈을 먹었건만 아이는 열심히 꿈을 꾼다. 가끔 안방에서 자고 있는 나를 깨울 정도의 잠꼬대를 한다. 션머션머 중국어로, 쏼라쏼라 영어로, 종알종알 한국어로, 울다가 소리 지르다 웃다가 아주 다채롭다. 아이 잠꼬대를 들으며 비몽사몽간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아이의 인생에서 나의 역할이란 딱 이 정도로군. 꿈을 먹어주는 척을 할 수는 있지만 결코 꿈을 대신 꿔줄 수는 없다. 불안이나 힘듦이나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 그 거대한 감정들을 언제나 오롯이 혼자 감당할 아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발이 시려서 이불을 더 끌어당긴다.  


하지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자신을 위해 꿈을 먹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맞이하는 아침은 조금 다를 것이다. 고통도, 좌절도, 아픔도 분명 그럴 것이다. ‘인간은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가장 용감하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부모가 주는 사랑의 다른 이름은 용기라는 것을 안다. 무엇이든 견뎌낼 만한다는 작은 확신은 거기서 시작될 것이니. 


오늘도 기꺼이 꿈을 먹는 엉터리 마법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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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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