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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7. 2022

일상을 기대하고 감각하기

태도에 관하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칼국수가 맛있어 봤자'라는 단정이 아니라 온 몸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 칼국수가 인생 칼국수로 등극할 즐거운 가능성이 앞에 있기 때문이다. 통영의 바람을 머금은 다시 멸치로 뭉근하게 끓여진 육수가 당신의 위와 영혼을 동시에 깨우고, 입에서 탱고 춤을 추는 듯한 쫄깃한 면과 새빨간 양념장이 오감을 자극할 것이다. 열려 있는 마음과 감각은 진짜 칼국수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입장권 같은 것이다. 아무 준비도 안된 이에게 그 세계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한 끼의 식사가 허기를 채우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되어버리면 마음이 가난해진다. 인생의 위기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염세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스스로가 위기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시간에서는 세상의 사물이 쓸모와 무쓸모로 구분되고, 아름다운 것들은 사치처럼, 주변인의 감탄과 경이는 따분하고 때로 유치하게 느껴진다. 종내는 '이게 뭐가 맛있다고 호들갑이지?'라던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소설이나 시 따위를 읽어서 뭐해, 그 시간에 자기계발서를 보는 게 낫지'라던가,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잘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오후를 갖게 된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던 어느 가을에 나 역시 그런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문득 그런 스스로에게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시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평소 가장 경계하던 나 -마치 인생을 다 살아본 양,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는 양 사람들의 감탄과 경이를 쉽게 무시하면서 속단하는-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해봐서, 가봐서, 먹어봐서 아는데'라고 쉽게 젠체하는 사람을 제일 멀리하고 싶다.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박완서 선생님의 아름다운 문장을 기억한다. 


칼국수가, 된장찌개가, 김치가 맛있어 봤자 뭐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아주 뻔하디 뻔한 끼니 앞에서도 마음을 열고, 한껏 기대하고, 맛보고, 그것에만 있는 특색들을 찾아내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무엇'이 있다. 일상의 영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특별한 일상을 평범한 감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인생을 남다르게 감각하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생이라는 진부한 순환 속에서도 귀한 순간은 모퉁이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 순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고 감각하는 이에게 마땅히 발견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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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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