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말

by 심루이

지난여름,
쌍둥이를 태운 유모차가 지나가자 은재가 내게 안쓰러운 목소리로,
"엄마 저기 아기가 둘이야, 키우기 정말 힘들겠다"
고 말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아냐, 키우기 힘들지만 기쁨이 2배 이상이 되는 거야. 너처럼 귀여운 아이가 둘인데 얼마나 행복해"
라고 얼버무렸지만,
은재가 듣는 줄도 모르고 아이 둘 키우는 거 힘든데 너 진짜 대단하다,를 친구 앞에서 연발한 게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랬더니 은재가
“엄마 딸은 키우기 편한데 아들은 정말 힘들죠?” 이러는 거다.
아 또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은 걸까.
나는 웃기면서도 당황스러움에 거의 울 뻔했다.

은재의 언어가 날로 생생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다.
때 묻지 않고, 기억할 게 많지 않은 아이의 기억력이란 실로 놀라워서
아이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매일 깨닫고 있다.

하루는 은재가 큰 소리로 신경질을 내길래,
"지금 엄마에게 화내는 거야?"라고 물어봤더니
은재왈
"화내는 거 아니야, 그냥 목소리를 크게 한 거야"라고 말했다.

이건 언젠가 내가 남편에게 했던 대사와 똑같아서 웃음이 빵 터졌다.

은재가 유치원 가기 싫다고 한 어느 아침에는 하원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자고
아이를 달래 유치원에 보내고 컨디션이 별로라 그냥 쉬었는데,
아이는 버스에 내리자마자 신나서 ‘우리 **집에 놀러 가요?’라고 물었다.
오늘 ** 집에 없대,라고 대충 둘러댔는데, 유치원 선생님과 전화를 하다 보니 아이는 유치원 선생님께도 그 친구 집에 간다고 자랑을 해 둔 상황이었다.
갑자기 너무 미안해서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나는 농담이라며 장난처럼, 아이를 쉽게 달래기 위해 건성으로 하는 말이 아이에게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되고 기억되는 걸까.
늘 나는 이미 까먹어버린 이야기들이 아이의 입으로 다시 전달될 때
소름이 돋는다.

어떤 말들은 가슴에 남아 평생을 맴돌기도 하는데,
내가 무심코 하는 말들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매일이 조심스러운 날들이다.
언어의 따뜻함, 말의 소중함을 가르쳐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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