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습득

by 심루이

예전에 오래 다녔던 영어 학원 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말했었다.
언어 실력의 상승 곡선은 오르막이 아니라 계단 형태다. 그러니 왜 이렇게 실력이 오르지 않냐고 한탄하며 조바심 내지 말라.
열심히 매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계단 올라가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력이 지지부진하다고 느낄 때 당신은 계단 바로 앞에 있다.

사이비 종교 리더의 말씀같은 느낌이지만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느꼈고 그 말을 신봉하며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 것 같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정말 스스로 만족할 만큼 제대로, 꾸준히 언어를 공부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나는 늘 언어와 글을 사랑했지만 주변에서 맴돌고만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올라가는 것은 서서히 좋아지는 형태일지 몰라도 내려가는 건 바로 ‘낭떠러지’라는 거다. 지난여름 고작 3주 동안 서울에 다녀왔었는데, 다녀오니 아주 쉬운 한자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한 학기 동안 줄곧 써온 단어인데도, 막상 쓰려고 펜을 들면 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갈고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너무나 헷갈렸다. 회복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다.

대학생 때 잠시 캐나다에 다녀왔던 것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언어’를 습득하고 있다. 물론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는 완벽하게 ‘은재 엄마’로 돌아가야 하고, 집안일에 바쁘니 시간의 여유는 없는 편이지만 마음가짐 자체가 그렇다. 완벽히 새로운 언어를 제대로 공부해서, 맛보고 싶다는 열망. 그 열망 하나만큼은 굉장히 뜨거운 상태다.

첫 학기였던 지난 학기에는 그야말로 백지상태라, 습득의 속도도 빨랐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 절실해서 은재 엄마가 되는 6시간을 제외하면 중국어만 생각하면서 지냈다. 블로그와 한국 책, TV, 콘텐츠도 그때는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노량진 고시촌 분위기를 방불케하는 이번 학기는 지난 학기보다 훨씬 숙제도 많고, 힘든데 기대만큼 늘지 않는 것 같은 초조함이 있다. 이제 3월이면 중국어를 공부한 지 일 년인데, 난 어디쯤 와 있는 거지? 계단을 하나는 오르긴 했나?는 물음들.

국문학과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숫자 ‘7(七)’과 ‘9(九)’가 헷갈리는 상태로 중국에 왔다가 이제 길거리 간판이나 메뉴판에서 중국어를 조금은 읽을 수 있으니 대단한 발전이라고 자찬하다가, 타오바오에서 물건 설명을 읽어 내리며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상심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무엇보다 이제 웬만큼 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도 조금 희미해졌고, 이곳의 한국 친구들도 꽤 많이 생겼고, 국제 학교에 아이를 보내려고 하니 사실 더 중요한 건 영어라는 생각…등등 뭐 블라블라.

요즘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분이 계신다면 바로 우리 반 최연장자 학생이다. 아이들이 벌써 대학생. 처음 뵈었을 때 학원이 아닌 학교를 선택하신 게 조금 의아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놀랍다. 늘 거의 1-2등으로 등교해서, 늘 같은 자리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업을 들으시고, 수업 중에 모르는 부분은 꼭 짚으며 선생님께 깊이 있는 질문도 많이 던지신다. 뒷자리에 앉은 조카뻘의 우리에게도 종종 질문을 주시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늘 웃음과 여유가 가득한 얼굴로 인사해주시는 모습, 학교 식당에서 어린 중국 친구들과 섞여 점심을 드시는 모습이 때로 감동적이다. 중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어 중국어를 배운다는 소박한 이유도 그렇다. 남편과 함께 학교에 다니시는데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그 모습도 아름답고, 심지어 지난 중간고사에는 종합시험 점수 만점을 받으셨다.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배움의 가치와 이유는 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저 나이가 되어도 저렇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자문도 함께. 숙제 많다고, 이거 나중에 써먹을 수나 있겠냐며, 왜 늘지 않냐며 투덜댔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전거를 타고 등굣길을 달린다.

한국에 내가 포기하고 두고 온 무언가를 위해 무언가를 얻어 가야 한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닌 그저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배움 그 자체에 계속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다짐들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어쨌거나 나는 언제쯤 계단 하나를 오를 수 있는 건가, 몹시 궁금한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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