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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출장

너의 첫번째 연애시대

by 심루이

긴 출장을 떠나는 아빠를 태운 택시가 출발하자,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왜 울어~ 물었더니
아빠 보고 싶을 것 같아.라고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이 짠하고 귀여웠지만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 “그럼 우리 **이네 놀러 갈까?”했더니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0.1초 만에 눈물을 그치고
“진짜?”라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적당히 놀고 헤어져야 하는데 아이는 친구에게
우리 아빠 출장 갔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라고 묻지를 않나,
친구는 아빠 오셔서 얼른 집에 가야 하잖아,라고 말하는 내게
그럼 우리처럼 아빠가 출장 간 친구는 없어? 하지를 않나,

아빠 보내고 서럽게 울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아빠의 부재를 한껏 즐기는 모습이다.

바쁜 출장 일정 사이사이에서 아이를 그리워하는 일은 오롯이 아빠의 몫이다.
친구와 노느라 아이는 영상 통화로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정신조차 없다.

결혼과 육아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내가 사랑했던 한 명의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해주니까.
연애에 익숙지 않아 고개 처박고 설렁탕만 먹던 한 남자가, 살림에 무지한 여자를 만나 자상할 수밖에 없는 남편으로 거듭나고,
똑 부러지는 AB형 딸아이를 만나 때론 쩔쩔매고, 때론 유치하고, 한없이 자상한 아빠가 되어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무척이나 즐겁다.

나는 가끔 완벽한 제 삼자가 되어 두 사람을 바라본다.
아빠와 딸이라는 쉽지만은 않은 관계를 지금처럼 별다른 간섭없이 둘만의 언어로 잘 만들어가기를 기도하면서.
많은 노력을 해 나갈 두 사람의 영원한 목격자이자 기록자가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빠는 긴 출장을 끝내고 다크서클을 얼굴에 한가득 달고 집으로 돌아오고
아이는 현관 벨 소리가 들리자마자 늘 그랬듯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집 안 어딘가로 숨는다.

바로 아이의 엉덩이나 발가락을 발견한 아빠는

아이가 있는 그곳만 일부러 피해 큰 소리를 내며 아이를 찾고, 아이의 웃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친다.

숨바꼭질의 승자가 된 아이의 행복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거실을 한가득 채운다.
매일 지겹도록 반복되는 장면들.

소중한 시간은 더욱 빨리 가는 법이니,

심이는 숨바꼭질처럼 유치한 걸 내가 매일 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시침을 떼는 아이로 금세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커튼 아래에서 웃음을 참으려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던,
은재의 자그마한 발가락을 언제라도 벅차게 그리워하는 우리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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