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주재로 급히 회사를 관두고, 베이징에 온 이후
작년부터 베이징 경제관리학교에서 중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외국 친구들도 많지만 절반 이상은 한국인 엄마들이다.
우리 교실엔 종종 귀여운 게스트가 출몰한다. 바로 대 여섯 살의 아이들.
대부분 사정 상 유치원에 갑자기 가지 못해 엄마 손을 잡고 쫄래쫄래 학교로 함께 오는 것이다. 말이 놀러 왔다지, 고시촌을 방불케하는 우리 교실에는 아무것도 놀 것이 없으므로 3시간가량 교실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고역이다.
학생의 70%가 아이 엄마이므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이를 환영하기 마련이다. 다들 한마음으로 추운 바람, 복잡한 출근길을 뚫고 어린아이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을 엄마를 응원하게 된달까. 또한 같은 마음으로 아이가 지루한 시간을 잘 버텨 주기를 바라게 된다. (유난 떨지 말고 하루쯤 쉬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유난을 떨어도 어쩔 수 없는 무수한 날들이 있고, 그날들에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봐야 하므로, 조금이라도 가능한 날에는 무조건 용감해져야 한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는 꼭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규칙을 알 수가 없으므로 온몸을 꼬면서 소리를 내거나,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교실 곳곳에서 과자가 전달되면 과자를 소리 내 씹고, 공부하는 엄마를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선생님의 중국어 발음을 우리보다 훨씬 유창하게 따라 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이 단어는 꼭 중요하니 문장을 통째로 외워야 한다고 압박을 주던 때에는 갑자기 한숨을 크게 쉬어 우리를 웃기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먹거나, 무언가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아마도 당당하게 영상물을 오래 시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다. 그러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기도 하고, 갑자기 궁금한 거 투성이라, 큰 소리로 엄마에게 묻기도 한다. 킥킥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은 우리 몫이다.
아이를 교실에 데려온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몇 번 아이를 데리고 온 언니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건 좋다 쳐도 정작 전혀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실토하지 않았던가.
유치원이 갑자기 일주일 방학을 선언한 지난 가을, 나도 누구에게 맡기지 이리 저리 고민할 것 없이 은재를 학교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다들 데리고 오기도 해요, 괜찮아.’라며 자신만만했지만 막상 전날 저녁이 되니 아침에 자는 아이를 깨워 만원 버스를 타고 학교에 함께 갈 수 있을까. 아이가 3시간 동안 별 탈 없이 내 옆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등등 생각이 꼬리를 물며 자신이 없어졌다. 결국 매일 오전 옆집 언니 집으로 아이를 등원시켰다.
교실 안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기침 소리, 노랫소리, 탄성 소리에 한없이 민감해지는 엄마의 애타는 속도 모르고,
엄마 옆에서 즐겁게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뒷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뭉클하다.
엄마는 널 데리고 학교까지 가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니 너도 열심히 해, 가 아닌
언젠가 기억조차 희미할 이 풍경을 아이가 문득 떠올리게 된다면
우리 엄마 참 괜찮게 열심히 살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니까 포기, 하지 말고,
엄마니까,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세상의 모든 엄마들, 응원합니다! 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