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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30. 2022

지금, 당장 무브무브!

움직임의 뇌과학

몸과 정신의 상관관계는 조지 쉬언의 한 문장으로 명확하게 표현된다. '몸의 형태가 정신을 규정'한다. 그렇다. 몸이 곧 정신이다. 이 소중한 문장을 몸 깊숙이 박아두었지만 너무 소중하게 다뤄서 그런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 때가 많다. 너무 소중한 것들을 부러 꽁꽁 싸매 완벽한 장소에 두고 훗날 결국 그 장소를 찾지 못하는 실수를 항상 반복하고 있는데 이 문장이 꼭 그 격이다.


지난 토요일 롱블랙*은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에디터인 캐럴라인 윌리엄스가 쓴 <움직임의 뇌과학>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우리가 뻔히 알고 있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소개했다. 이 노트를 읽으니 구석에 박혀 있던 조지 쉬언의 문장이 번개처럼 되살아나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글을 읽는다면 당신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밖에 나가서 전력질주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글을 쓴다.


정리하자면 움직임이 모든 걸 좌우한다는 뻔한 이야긴데 운동을 싫어하는 나를 자극할 만한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우선 저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주로 앉아 있는 나와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는데 동질감을 느꼈다. 작가는 '정신을 변화시키는 즉흥 무용'이라는 강좌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며 활기와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으며 이때의 강렬한 경험으로 움직임이 정신에 미치는 파격적인 영향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요즘 성인들은 일상 생활 중 평균 70퍼센트를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서 보낸다. 1960년대 성인에 비해 30퍼센트 정도 적게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면서 정신에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적인 생활은 IQ의 하락, 창의적 아이디어의 고갈, 반사회적 행동의 증가, 모든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정신질환의 급속한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의식은 얼른 운동해야지! 하는 격렬한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한꺼번에 격하게 몰아서 하는 '운동 폭식'은 좋지 않다.


-함정이 있다. 우리가 움직임을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운동, 고강도 운동으로는 상황을 만회할 수 없다. 운동 직후에 기분과 집중력이 상승하는 건 사실이지만 점심시간 한 시간 스피닝 수업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지 여부는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10p


가볍게 몸을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핵심인데 역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운동이자 행위인 걷기로 되돌아온다. 일찍이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위대함과 관련해서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두꺼운 책을 썼다. 이 책에는 당신이 걸어야 할 이유가 모두 적혀 있다. 하지만 <운동의 뇌과학>은 새로운 과학적인 사실을 덧붙여 준다. 뼈가 기억력과 기분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유전학과 의사였던 제라드 카젠티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뼈에 있는 '오스테오칼신'이라는 물질은 기억력을 관장하는 뇌의 해마에 영향을 준다. 걸으면 오스테오칼신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촉진된다.


그러니 '걷기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만들어낸다'라는 솔닛의 문장은 일리가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이라고. 어딘가를 지나가며 생각도 하고, 오스테오칼신까지 만들고 있으니 이렇게 훌륭할 수가.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의 문장도 참고할 만하다. '움직임이 인간에게 진보의 감각을 준'다. 정말이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진보의 감각을 위해서 하루 종일이라도 걸을 것이다.


걷는 것은 꽤 잘하지만 '근육 거지'인 나를 흔들었던 두 번째 문장은 '근력이 기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한 연구는 근력이 강해질수록 자존감이 높아지고 불안 증세가 줄어들며 수면의 질이 개선되는 것을 보여준다. 근력을 훈련하면 삶을 관리할 수 있다는 느낌도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 써 가는 치약처럼 내 몸에서 계속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근육들을 붙잡아야 할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자세도 기분과 스트레스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래, 그럴 것 같아...가 아니라 실제 실험한 결과다. 똑바로 앉는 사람은 긍정적인 단어를 잘 기억했고, 구부정한 자세의 사람은 내면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쉽게 자책하고 과거를 곱씹게 됐다는 것이다. 자세에 변화를 주면 뇌에 보내지는 메시지도 달라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가끔씩 우리를 찾아오는 우울과 자책은 모두 삐딱한 자세 때문일지도 모르니 이 결과를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은 호흡이다. 최근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으며 처음으로 호흡에 관해서 생각을 했다. 그에 따르면 호흡은 자기 자신이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평생 제대로 된 호흡을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다.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가 바로 그런 사람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는 호흡의 어원부터 건드린다.


-호흡과 관련된 중요한 어휘들을 생각해 봅시다. 영감을 뜻하는 단어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에는 숨을 들이마신다, 즉 흡입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열망을 뜻하는 단어 ‘애스퍼레이션aspiration’에는 숨을 내쉰다, 즉 흡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신이나 활기를 뜻하는 '스피릿spirit'과 '스피리추얼spiritual’의 어원도 숨을 쉰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런 언어들의 관련성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본연의 생기와 힘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면 일상적으로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움직임의 뇌과학은 올바른 호흡법으로 코로 하는 호흡을 강조한다. 코와 뇌 사이 직통 라인이 있어 코호흡을 하게 되면 호흡과 뇌파가 동기화되면서 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입 호흡은 구취와 충치도 유발해서 지양하는 것이 좋다. 5초 동안 숨을 들이쉬고 5초 동안 숨을 내쉬는 분당 6회 호흡법도 추천했다. 이 호흡법이 산소 섭취를 최대화할 뿐만 아니라, 부교감신경계의 일부인 미주신경을 자극해 몸을 진정시킨다고 한다. 긴 호흡이 몸에 좋다는 것은 낯선 사실이었다.


'걷고, 뛰고, 춤춰라!'라고 선명하게 적힌 이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프롤로그 마지막 문단에 감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과학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인데, 똑똑해지고 싶으면 움직여라...라니 이보다 더 강력하고 매력적인 설득은 없다.


-과학은 데이터를 제공해 주었고, 이들은 내가 당장 어떻게라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똑똑해지고 싶고,

우울한 기분을 떨치고 싶고,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싶은 당신에게 과학은 단 한 문장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쉽게 우울함에 빠지거나 불안해지는 성격이라면 자신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몸이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이 일상이 되면,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마음 챙김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부정적이고 쓸데없는 생각들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작심삼일 인간이니 3일에 한 번씩 이 글을 읽고 몸과 마음의 기지개를 동시에 켜볼 생각인데 큰 기대는 없다. 어차피 책 한 권으로 내가 매일 헬스장에 가고, 다시 수영을 하고, 격한 운동을 사랑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길 리는 만무하니까. 다만 어제 별 고민 없이 한 정거장을 걸었고, 치킨을 픽업해 올 때 전속력으로 뛰어보았다. (배달이 아니라 픽업에 밑줄) 오늘 눈뜨자마자 1분 스트레칭을 하고 양치질을 할 때는 스쿼트를 해봤다. 게다가 이 글을 어깨와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똑바로 앉아서 썼고 업로드하고 집안일을 위해 몸을 움직일 때 어제보다 조금 덜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역시 좋은 책과 지식은 세상의 억울함을 덜어내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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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따오에서 아침 산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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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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