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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Nov 29. 2023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두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오늘

1.

스토아 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우리는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의 공격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놓을 수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펼칠 것. 자기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소설을 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말 것.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스토어 철학의 이 조언이 큰 위로처럼 느껴지는 일년이었다. '일어날 일을 일어나게 두고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는 단언이 내 마음을 달래고 불안에서 나를 끄집어냈다.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는 삶. 


2.

올해 양대 산맥으로 내가 의지했던 문장은 앤라모트가 <쓰기의 감각>에서 인용한 작가 E.L 닥터로의 문장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밤중에 차를 모는 것과 같다. 우리는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밖에 볼 수 없지만 그런 식으로 끝까지 갈 수 있다.


앤라모트는 이것이 글쓰기뿐 아니라 삶에 대한 최고의 조언이라고 했고 나도 동감한다.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딱 그만큼 보면서 해야 할 일을 할 것. 대신 몰입감을 키울 것. 삶은 지금 여기에도 있고, 내일에도 있고, 훗날에도 있을 것이니 그때의 삶은 그 때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내 눈앞의 삶을 살자, 뭐 대략 그런 '무책임해 보이지만 한없이 책임감있고 성실한' 이야기. 


3.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살기 위해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적극적으로 감사를 느끼고 표현하기로 했다. 하루 안에서 버티는 스스로를 응원하고, 대견해하기.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에서 뒹굴며 오 분 정도 햇살을 만끽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11월 29일. 다시는 오지 않을 하루가 또 시작됐네. 


잠들기 바로 직전 잠결에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하루가 끝났어. 고생했어, 오늘도. 무탈하게 괜찮은 하루였다.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소한 이 변화가 가끔 내 안의 무언가를 툭 건드려준다. 


철학자 고 김진영 선생님이 병상에서 적은 문장이 떠오른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자기를 긍정하는 것보다 힘센 것은 없다.  

 

아침과 밤에 '나'와 나누는 짧은 인사는 나를 긍정하는 아주 사소한 방법 중 하나다. 선생님의 문장처럼 이것보다 힘센 것은 없다고 믿는다. 


잠은 어쩌면 짧은 죽음, 우리에게는 매일 새로 태어날 기회가 있다. 삶이 조금씩 명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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