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루이 May 07. 2024

어느 날 갑자기 응급실에 당도했다.

응급실에서 앉아서 보낸 24시간

1.

어떤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사건들이 있다. 김연수 작가의 문장처럼 "삶이란 눈 구경하기 힘든 남쪽 지방에 느닷없이 내리는 폭설 같은 것"이니까.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면 모든 사건의 전조는 존재했다.  


평범한 날의 오후 세 시,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여느 때처럼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대형 테이블은 만석이었고 조금 기다리니 자리가 생겼다. 유난히 운이 좋은 날이네 싶었던 순간,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몇 년 전부터 수면 장애를 겪고 있는 엄마. 무기력증이 함께 찾아오면 엄마의 컨디션은 한없이 다운된다. 최근 엄마 컨디션은 아빠의 목 디스크 수술과 병간호로 심각한 하강 곡선을 타고 있었다. 엄마 컨디션이 나빠지면 나는 한 번에 눈치챌 수 있다. 엄마 얼굴에서 진짜 웃음이 사라지고 가짜 미소만 남으니까. 매일 아침이면 우리에게 도착하던 메시지도 함께 사라지니까. 평소 낮잠을 자지 않는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떨어진 컨디션을 다시 끌어올리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산책이라도 함께 나가보고 싶어서 주변을 어슬렁거리지만 엄마는 이미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다. '그때의 엄마'는 전화기를 신경 쓰지 않기에 메시지 답장도, 전화 콜백도 없다. 평소 너무나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엄마이기에 그 간극은 한겨울과 한여름처럼 크게 다가온달까. 


그 시기의 엄마 전화는 늘 반가웠다. 내게 전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이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도서관 바깥으로 뛰쳐나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다정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지금 어디야?"라고 묻는 엄마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자못 의미심장했다. 


"눈이 안 좋아서 동네 안과에 갔는데 지금 당장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한대."


'지금 당장', '응급실'이라는 강력한 단어는 주변을 슬로모션으로 바꾸어 버린다. 얼마 전에 엄마가 눈이 침침하다고 했다. 안과에 갔더니 왼쪽 눈 끝에 반점이 생겼다고 주사를 권했다. 그 주사를 맞은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평탄한 삶을 살아오며 가끔 이런 전화를 받게 될 나를 상상했었다. 그게 오늘이구나.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빠르게 가방을 쌌다. 목 디스크 수술로 왼쪽 팔 감각을 잃고 거동이 불편해진 아빠와 눈에 치명적인 공격을 받은 엄마가 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리며 춘에게 전화를 걸어 하원하는 심이를 챙길 수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내 목소리도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때 알았다. 너무 놀라면 더없이 차분해지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딱 하나의 과제만이 머리에 남는다. 


엄마에게 가는 길은 유난히 추웠다. 문득 스쳐가는 아침의 일기 예보. 올겨울 제일 추운 날이 될 것이라 했던가. 엄마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도착지는 강남성모병원 응급센터. 병원, 약과 친하지 않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먼 장소였다. 그땐 몰랐다. 갑작스러운 병실 생활이 시작되리라고는. 


2. 

응급실에 도착하니 당연하게도 사람이 많았다. 동네 안과에서 써준 진료의뢰서를 보여주며 접수를 했다. 보호자칸에 쓰이는 낯선 내 이름. 데스크에 있는 직원이 말했다. 


"정말 정말 정말 오래 기다리실 수 있어요." 


'정말'이 세 번이나 들어간 문장에 왠지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그렇군요, '정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다니 놀라운 표현력이에요. 그럼 돌아갈게요"라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영하 17도의 한 겨울에 응급실에 당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선택지가 없는 우리는 작게 "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사람이 북적여 앉을 자리도 없는 대학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니 엄마 이름이 불렸다.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는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간단한 상황 파악을 위해 부른 듯했다. 서류를 간단히 살펴 본 응급실 스태프는 엄마에게 오른쪽 눈을 가리라고 하더니 왼쪽 눈 바로 앞에서 손가락을 브이로 만들었다.


"이거 몇 개인지 보이세요?"


'아니, 지금 장난하시는 거예요, 코앞에 있는 손가락 두 개가 안 보일 리 없잖아요'라고 생각하며 어이없어하는 내게 세상이 또다시 슬로우로 바뀐다. 엄마가 고개를 가로저은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손가락 두 개가 보이지 않는다. 뭐지? 쿵. 마음속에 커다란 돌 하나가 떨어졌다. 이어진 안과 진료는 더 절망스러웠다. 덩치가 꽤 큰 당직 의사 선생님은 '오늘 날씨가 꽤 춥네요' 정도의 느낌으로 이런 말을 했다.


"'망막 괴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이네요. 급성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면 실명의 위험이 있어요. 당장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예후는 좋지 않을 수 있어요."


그때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어지는 말도 꽤 무서운 말이었다.


"바로 입원 하셔야 하는데 병실에 자리가 없네요."


아빠가 경추성 척수증으로 수술을 했을 당시, 생각보다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며 듣게 된 단어가 '사지 마비'와 '팔 감각 상실'이었다. 정확히 2주일 후 응급실에서 '괴사'와 '실명'이라는 단어를 듣는다. 다른 설명은 사실 잘 들리지도 않았다. 한때 마라톤 풀코스를 함께 완주하며 건강의 상징이던 나의 부모님께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다고? 나는 갑자기 발신자를 모르는 소포를 받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안센터에서 절망적인 소식을 들은 뒤 아수라장인 응급실로 돌아왔다. 삶 속에서 종종 무기력함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최고의 무기력함은 '입원도, 퇴원도 할 수 없는 응급실'에 있었다. 간호사는 오늘은 병실이 만석이라 내일 빈 병실이 나오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병실이 내일 나올 수도 있고, 더 오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5일 동안 기다렸던 분도 계세요. 응급실에도 병상이 없어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셔야 해요."


응급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들었던 '정말 정말 정말'보다 '5일'이라는 단어는 더 구체적이지만 비현실적이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이 도떼기시장보다 소란한 곳에서 심각한 수면장애에 실명 위기를 눈앞에 둔 엄마와 '앉아서' 밤을 새워야 한다. 입원까지 며칠이 걸릴지는 기약할 수 없다. 이 소리죠?


엄마와 온갖 수다를 떨며 살아왔지만 그때만큼은 아무런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그저 손을 꽉 잡았다. 친오빠 앤드류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러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어느 수준의 절망까지 전달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로봇처럼 사실만 전달했다. 짧은 통화를 끝내고 유리창 너머 엄마의 작은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사건의 모든 전조들이 갑자기 나를 덮치는 기분이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아주 살짝 우는 것. 그리고 그것을 티 내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곧 끝날 사소한 일인 양 연기하는 것. 


불과 일주일 전 우리가 함께 본 변산 바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