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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May 15. 2024

뜯지 못한 콩나물국의 슬픔

한 쪽 손과 한 쪽 눈 

경추성 척수증 수술 직후였던 아빠는 왼쪽 팔의 감각이 사라져 혼자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 가기도 불편할 정도였기에 아빠를 챙기는 것도 문제였다. 혼자서 할 수 있다며 우리를 안심시키는 아빠를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배달앱을 이용해 아빠의 저녁과 아침을 주문했다. 그때는 몰랐다. 한 손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 배달 음식들은 꽤 레벨이 높다는걸. 


입원 3일째, 친정에 들렀더니 주방에는 아빠가 미처 뜯지 못한 콩나물국이 있었다. 행여라도 샐까 봐 몇 겹의 비닐로 꽁꽁 싸매진 국. 살펴보니 배달 시킨 컵밥도, 식빵도, 바나나도, 샐러드도 한 손으로 뜯기는 쉽지 않았다. 아빠는 별다른 내색 없이 배달 음식의 일부만 드시며 버티고 계셨다. 착잡한 마음으로 식재료의 뚜껑과 비닐을 해체했다. 바나나도 뜯기 쉽게 칼집을 냈다. 


동시에 찾아온 아빠의 한 쪽 손과 엄마의 한 쪽 눈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려 하는 것일까. 


안과는 입원 생활을 하는 환자가 가장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과였다. 의사 쌤이 아침에 병실 외래를 도는 다른 과에 비해 각종 장비가 필요해 환자가 직접 안센터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 7시 전에 첫 진료가 있는 날에는 6시 30분부터 산동제를 세 번 넣었다. 8시 반 즈음에는 담당 교수님 진료가, 오후에는 격일로 안구 주사가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안센터를 왔다 갔다 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안과 질환의 환자들은 대부분 휠체어를 탄다. 엄마의 휠체어를 처음 밀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보호자의 역할이 완벽하게 바뀐 느낌. 내가 언젠가는 엄마 아빠의 보호자가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새벽 6시 30분 엄마 휠체어를 미는 순간 완벽한 현실이 됐다.


안센터 복도의 새벽 모습은 생경했다.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휠체어에 앉은 환자들이 있었다. 알고 보니 황반원공 수술을 한 환자들이었다.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부에 구멍이 생기는 병인 황반원공은 수술로 주입한 눈 안의 가스가 올바른 위치에서 아래로 눌러지도록 최대 2주간 엎드린 자세를 권장한다. 그것이 수술 결과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유난히 겁이 많은 엄마가 제일 두려워한 건 당연히 주사였다. 그 예민한 눈에 주삿바늘을 꼽는다니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떨렸다. 주사실 앞에서 위생을 위한 파란 비닐을 머리와 두 발에 착용하고 차례를 기다린다. 엄마가 눈에 마취약을 넣고 주사실로 들어가면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할 뿐. 최악의 컨디션으로 수능을 보러 들어간 나를 기다리며 엄마가 하루 종일 앉지 못하고 두 손만 모으고 있었다고 아빠가 그랬던가. 그것의 만분의 일 정도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하느님, 요즘에 성당 안 나가서 죄송해요. 오늘 덜 아프게 부탁드릴게요."


처음 주사실에서 나오는 엄마에게 "괜찮아?"라고 물었다. 괜찮을 리 없으니 그 질문은 넣어두었다. 안구 주사를 맞은 엄마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눈 안에 모래가 잔뜩 들어간 것 같은 까끌까끌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꼼짝없이 가만히 누워서 눈을 달래며 두세 시간을 보냈다. 이틀에 한 번씩 주사를 맞는 엄마 눈은 갈수록 시뻘게졌다. 가끔은 파랬고 가끔은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눈이 어떠냐고 묻는 엄마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거짓말했다. 


진료를 위해 안센터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외에 병실 생활은 대체로 따분했고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김영민 작가의 <아침의 피아노>에서 읽은 한 문장이 떠올랐다.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 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병실에 한가롭게 있을 때면 나도 자연스럽게 간호사님들의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예상보다 훨씬 고되고 선후배 간의 규율이 엄격한 직업이라는 것을 매 순간 느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 그 안에 여유와 웃음이 들어갈 여지는 현저히 적은 거겠지.


워낙 많은 환자가 있는 대학 병원이다 보니 진료 시간이 잘못 전달되고, 약이 잘못 배달되는 등 매일 크고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잘잘못을 따질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서 억울해도 침묵하는 쪽을 택했더니 핀잔과 꾸중 중간쯤의 언어들이 자주 우리를 찾아왔다. 병을 앓는 것은 죄가 아니다.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니듯이. 그런데 왜 자꾸 을의 자세로 머뭇거리게 되는 것일까. 


병실 생활은 자주 혼나는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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