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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May 15. 2024

코드블루와 코 고는 소리

병실의 밤 

좁은 간이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두 손을 다소곳이 가슴에 모은다. 신생아처럼. 간이침대를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최대한 소리를 줄여 침을 천천히 삼킨다. 이불로 사용하고 있는 두꺼운 패딩 점퍼를 덮었다가 둘둘 말아서 안았다가 해본다. 등만 기대도 어디서든 잠드는 나이지만 병실의 밤은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잠꼬대. 


응급실 소파가 아니라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병실에서의 첫 밤은 엄청난 잠꼬대와 함께였다. 병실에 꼬리가 10개 달린 괴물이 찾아와도 그보다 큰 고함 소리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옆 침대 보호자였던 60대 아저씨가 지른 소리였는데 어찌나 컸던지 병실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이 소리를 지르며 깼다. 새벽 3시 12분. 시계로 확인한 그 시간이 생생하다. 


그다음 이어진 건 욕지거리였다. 18181818, 누군가에게 하는 숫자 욕이 잠꼬대가 되었다. 이것은 예전에 본 공포 웹툰 같은데... 괴로워하며 다시 잠들지 못했다. 비몽사몽간에 새벽 6시 반 1차 외래 진료를 보러 안센터로 향했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잠꼬대들은 늘 존재했다.


다음 복병은 코드블루였다. 새벽의 병실 복도에는 여러 차례 코드블루가 뜬다. 코드블루를 알리는 안내 방송은 생각보다 또박또박 여유롭고 다정해서 생경했다. 코드블루가 뜨면 와다다다 뛰어가며 소리 지르는 긴박한 의료진들을 상상했는데 우리 층은 코드블루와는 별 상관없는 듯 조용했다. 하지만 안내방송은 꾸준히 이어졌으므로 잠들지 못한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새벽을 맞았다.


두 시간마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오는 간호사님들의 발자국 소리도 언제나 크게 느껴졌다. 


나보다 더 잠들지 못하는 사람은 수면 장애가 있는 엄마였다. 약을 드시고도 하루에 2시간도 채 주무시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자야 회복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을 텐데 어쩌나. 나는 내 뒤척임으로 행여 어렵게 잠든 엄마를 깨울까 봐 항상 긴장 상태였다. 


엄마가 눈을 감고 있을 때면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여보려 숨은 조금씩 나눠 쉬었다. 발가락,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정도로 답답함을 해소했다. 온몸이 굳어 돌이 되어버리는 상상을 하는데 침이 자꾸 꼴깍꼴깍 넘어가서 괴로웠다. 정적뿐인 병실에 울려 퍼지는 내 꼴깍 소리는 사이렌 소리만큼이나 컸다. 


엄마가 확실히 '잔다'라는 신호를 보내줄 때가 있었다. 코 고는 소리는 거짓이 없으니까. 그렇게 한참 엄마의 코 고는 소리를 집중해서 듣는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감미로운 소리네,라고 생각하며 혼자 킥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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