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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May 09. 2024

입원하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라니

우당탕탕 입원 초짜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응급실 밤샘. 엄마는 저녁부터 항바이러스제를 맞기 시작했다. 앉아서 맞는 링거라니, 생소했지만 그곳에서는 대부분 그랬다. 병원 지하 편의점에서 사 온 크림빵과 우유로 저녁을 대강 때웠더니 새벽에 극심한 허기가 몰려왔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나가 병원 지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하나 먹었다. 새벽 세 시, 대학 병원 응급실, 컵라면이라는 기막힌 조합. 어제 이 시간에 따뜻한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내가 희미했다.


심각한 수면 장애가 있는 엄마는 당연히 응급실 의자에서 잠들지 못했다. 응급실은 세상의 모든 빛과 소음을 담은 듯 너무 시끄럽고 밝았다. 조금이라도 소음을 줄일 수 있을까 싶어 두꺼운 패딩 주머니에 있던 무선 이어폰을 엄마 귀에 꽂았다. 병원 프런트 데스크에서 새 마스크를 받아 엄마 눈에 안대처럼 덮었다. 마스크가 자꾸 미끄러져 엄마 코를 가렸는데 혹시 숨쉬기 불편할 까봐 신경이 쓰였다. 엄마는 움직이면 큰일 난다는 듯 아무런 미동도 없이 돌처럼 앉아 있었다. 어떤 생각 속을 걷고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처음 경험하는 응급실의 밤은 굉장했다. 누군가는 고통에 신음하며 뒹굴었고, 누군가는 계속 토했다. 누군가는 아파서 울었고, 누군가는 슬퍼서 울었다. 응급실에는 세상의 온갖 슬픔과 아픔, 희망이 다 모여있었다. 내가 정말 몰랐던 세계는 국경 너머가 아니라 여기 있었구나. 


경황없이 한 커플이 도착했다. 외관상으로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아서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았다. 진료를 보러 잠시 사라진 커플은 이내 응급실로 돌아왔다. 넋이 나간 여자가 의자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엄마 잃은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그녀의 두 손을 잡은 남자도 무릎을 꿇고 같이 운다. 아무 사연을 모르는 나도 그 울음을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정말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이 내는 소리.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도 여성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응급실을 찾은 수녀님 한 분이 그녀의 등을 몇 차례 쓸어내렸다.


계속되는 간병과 응급실 출입에 이골이 난 듯 보이는 보호자도 있었다. 아버지처럼 보이는 노인에게 연신 소리를 질렀다. 이곳이 다른 곳이었다면 무례한 행동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서사를 함부로 짐작할 수 없는 곳이 병원이리라. 


한 노부부는 끝없이 싸웠다. 환자인 남편은 집에 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아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애원했다. 문득 화가 치밀었다. 지금 함께 해달라고 사정해야 할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예요. 설득과 미안함의 방향이 완벽하게 잘못됐네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침에는 자해를 한 젊은이가 왔다. 비몽사몽간에 앉아 있는데 의사와 젊은이의 대화가 들렸다. "수술용 메스를 사용하셨던데 혹시 업계 종사자세요?"라는 의사의 질문에 뽀글 머리를 한 청년이 대답했다. "쿠팡에서 산 건데요." 쿠팡에는 역시 없는 게 없구나, 잠결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뽀글이 청년은 집에 가겠다고 했다.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사람과 살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사람의 거리가 1m도 되지 않았다. 


응급실에 들어온 지 스무 시간이 지나갈 무렵, 나는 엄마 이름 옆의 '대기'라는 글자가 '수속'으로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응급실 스크린만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정말 정말' 응급실에서 5일을 기다릴 수 있고 그게 우리라면 나는 하루에 백 만원인 특실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젓겠지만 이렇게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다행히 나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 오후 2시에 입원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기쁨에 환호를 지르며 감사 인사를 연발했다. 입원할 수 있다는 소식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응급실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엄마가 이제 누워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치료의 여정이 한결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물론 엄마는 속이 모두 비어버린 사람처럼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내 인생 첫 응급실 밤샘은 그렇게 끝났다. 인생극장 열두 편을 집중적으로 시청한 기분이랄까. 더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바람이 나를 강하게 두드렸다. 너무 뻔했지만 귀한 마음이었기에 스스로를 기특해 하기로 했다.

하루 998,000원의 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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