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고
잠도 오지 않는데 작은 간이침대에서 버티는 시간이 힘겨워 차라리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소파와 책상, TV까지 완비된 깔끔한 병실 휴게실에서 무언가를 쓰거나 읽으며 밤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병원 휴게실 TV에서는 <현역 가왕>이나 <미스트롯>같은 트로트 프로그램과 여전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KBS 일일연속극이 나왔다.
휴게실은 다양한 삶이 너그럽게 공존한다는 점에서 응급실과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 누군가는 끝없이 가래를 뱉고, 누군가는 끝없이 코를 풀었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며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욕을 했다. 누군가는 좁은 복도를 걷고, 누군가는 책을 읽었다. 휴게실에 앉아 있으면 듣고 싶지 않아도 이별의 소식들이 조용히 귀를 두드렸다. 멍하니 앉아 그 소식들을 통과시켰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던 그곳에는 기묘한 너그러움이 있었다. 아픈 사람이 주인인 공간에서만 찾을 수 있는 너그러움. 통상적으로 거슬리는 행동이 난무해도 아무도 크게 신경 쓰거나 불쾌해하지 않았다. 이 너그러움이 때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휴게실에서 얼마 전에 다녀온 대만 타이베이 여행기를 썼다. 다가올 고난을 예감하지 못한 채 신나 죽겠는 표정의 여행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들며 현실 감각이 더욱 무뎌졌지만 개념치 않았다. 약을 먹고 잘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 타이베이 다녀올게. 잘 자"라고 말하는 순간이 좋았다. 모든 환자들이 잠든 새벽, 휴게실에서 여행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나는 다시 타이베이를 걷는다.
중국 가수 롱하오리(이영호)가 부른 <爱, 很简单(사랑은 단순해)>가 유독 새롭게 들린다.
정말 사랑이란 참 단순했다. 안정적으로 휠체어를 미는 것, 서로를 위해 매 끼니 잘 챙겨 먹는 것, 쉽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담지 않는 것, 등을 쓰다듬는 것, 엄마의 누가바와 아빠의 비비빅을 사서 냉동실에 채워두는 것. 그뿐이었다.
미미하고 사소해서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낙엽이 바스러지듯 사라질 것 같은 마음.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我永远都不放弃这爱你的权利
(당신을 사랑하는 이 권리를 영원히 놓지 않을 거야.)
작년 여름 이후 아빠의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매일 불안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애매한 시간에 오는 전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원인 파악이 늦어지고 치료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실명이라는 최악의 가능성이 자꾸만 머리를 강타했다. 긍정 3종 세트를 방탄조끼처럼 입고 있었지만 시시각각 불안했고 엉엉 울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버거웠다.
갈 곳 잃은 마음을 스토어 철학의 한 문장에 의지했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결국 일어날 일은 걱정과 염려의 두터운 벽을 뚫고 당도할 것이다. 어떤 준비도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의 깨달음에 온전히 기대 12층 휴게실에 앉아서 눈물을 용기로 바꾸는 연습을 했다. 우리 사이에 남은 사랑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방법을 골몰하면서.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내일 당장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눈물은 용기가 되고 용기는 행동이 된다.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걱정과 두려움이 덮쳐오더라도 그냥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자.
'어차피 몸이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다'*
*김영민, <아침의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