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던 신입 사원 시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날.
위가 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내일 어떻게 출근해야 할지 막막하던 그날에
이상하게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게살 수프’가 생각이 났다.
따뜻한 게살 수프만이 상처받은 내 영혼을 위로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나 할까.
당시 회사 동기이자 남자친구였던 춘이 힘없는 나를 질질 끌고 집 앞 ‘홀리차우’에 데려가 게살 수프를 앞에 들이밀었다.
내 영혼을 위로하는 닭고기 수프처럼, 게살 수프를 먹으니 조금은 힘이 났다. 여전히 회사 가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이후 종종 그 수프를 먹으면 그때의 내가 생각이 난다. 주저 앉지 않았으니 대견했다며.
영혼을 달래주는 수프를 중국에서 다시 만났다.
바로 훠궈. 그중 단연 토마토탕.
토마토를 평소 좋아하지 않던 터라 뭐가 맛있겠어,라며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았던 토마토탕.
하지만 먹고 나니 심장까지 데워주는 느낌이 든달까. 토마토 수프와 비슷하지만 더 깊은 맛.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날씨에는
따끈한 토마토탕과 그 속에 흠뻑 젖어 고개를 푹 숙인 촉촉한 배추가 절로 생각이 난다.
그래서 일주일에도 몇 번씩 먹는다. 나 중국 사람 다 됐나 봐.
말이 거창하게 훠궈지, 하이디라오 소스만 있다면 3분 카레처럼 간단한 메뉴다.
소스에 물을 섞어 팔팔 끓인다. 냉장고를 열고 돌아다니는 모든 재료를 넣는다.
배추, 청경채, 어묵, 만두, 떡, 버섯, 두부, 고기 기타 등등.
토마토탕이 베이스일 뿐 정해진 어떤 재료도 없어 그냥 굴러다니는 재료를 넣으면 그뿐. 진정한 '냉장고를 부탁해'다.
입으로 후후 불면서 토마토탕을 먹는 식구(食口)들.
불쑥 찾아왔던 감기 기운이 사라지고, 하루의 피로가 녹는다.
그나저나 그때 나의 실수를 따뜻하게 감싸주며 오히려 충격받았을 나를 걱정해주었던,
토마토 훠궈 육수처럼 따끈했던 선배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