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재와 화장실은 ‘소울메이트’ 같은 깊은 관계다.
가끔은 ‘대체 왜 이러나’ 싶을 만큼 자주 가고,
‘이제는 정말 나올 게 없다'는 확신 속에서도 무언가 꾸준히 나오고,
중요한 순간에는 늘 화장실이 그녀 곁에 있었다.
예를 들어
1시간 30분을 기다린 사파리 보트를 드.디.어 타려는 감격의 순간이라던가,
북경발 비행기가 착륙을 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라던가,
어린이 뮤지컬 '보물섬'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그 순간이라던가,
오랜만에 마음먹고 굽는 소고기 안심이 딱 적당하게 익은 그 순간이라던가,
뭐 등등의 무수한 순간에
내 손을 끌고 ‘엄마, 나 화장실…’이라고 간절하게 말하는 그녀가 있다.
낯선 곳에서 화장실을 빨리 찾지 못해 난감하게 발을 동동 굴리며 조금만 참아!!!를 반복했던
몇 번의 사건들이 지나자
은재는 화장실의 존재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게 되었다.
여행 이야기를 하며 “거기는 기차 타고 갈 수 있어. 너무 즐겁겠지?”라고 내가 묻자
은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하게
“기차에 화장실 있어?”라고 되물었고,
중국 드라마 ‘환러송’ 중 임원들 회의 장면이 길게 나오자
은재는
“왜 저 아저씨들은 계속 화장실에 안가? 벌써 다 갔다 온 거야?”라고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물었다.
유치원에서 생활하는 은재의 진짜 모습을 엿볼 수 있겠다며, 너무나 들뜬 마음으로 유치원 상담을 가던 날,
몰래 훔쳐본 교실 안에서 은재는 역시나 변기에 앉아 있었고,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은재를 데리고 국제 학교 상담을 가는 길에도 역시나 우리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차를 세웠다.
그래서 우리 육아의 팔 할은 은재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것.
낯선 곳에 도착하면 화장실이 어딘지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녀의 부름에 따라 화장실로 안전하게 잘 모시는 것.
올해 비행기 탈 일이 많아진 우리에게 가장 좋은 좌석은 그 어디도 아니요, 바로 화장실 근처.
몇 번의 비행 끝에 이륙과 착륙 시간에 은재의 방광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승무원을 불러서 애원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
신호가 오면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고,
춘은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를 번쩍 들고 한 발짝을 걸어 변기 위에 앉힌다. 끝나면 다시 번쩍 들어 좌석으로 옮긴다.
마치 드리블에 능수능란한 천재 농구 선수를 보는 느낌.
공을 보지 않아도 자유자재로 드리블 가능, 24초 안에 슛 가능, 3발 이상 움직이면 아웃, 뭐 그런 규칙이랄까.
그럴 때면 왠지 모르게 내 고개는 바닥에 중요한 게 떨어진 사람처럼 아래만 바라보고,
나 이 팀 아닌데? 다른 팀인데? 하고 싶은 느낌적인 느낌.
그리하여
무려 우리가 아는 것만 5개가 넘는 ‘화장실’이라는 의미의 중국어. 그리고 ‘화장실 어디예요?’
“시셔우지앤짜이날?(洗手间在哪儿)?"
이 문장의 유창함은 중국인 뺨을 친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