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택을 반복할 줄 아는 사람들
전주 웨리단길에 있는 카페 <평화와 평화>. 복잡한 상가 3층에 위치한데다 입구 간판이 크지 않아서 지도앱과 주변을 반복해서 두리번 거리며 한참 헤맸다. 일층 계단을 올라가며 발견한 문구.
우리는 용기내서 새로운 걸 시작했습니다.
지도가 없어도 길을 걷는 사람들.
갑자기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부풀어 올랐다 반복했다. 엄청난 공간을 맞딱뜨릴 것 같은 강력한 예감. 굳게 닫힌 평화와 평화 철문 손잡이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문을 열면 평화가 시작됩니다.
가만히 문을 여니 '여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큰 공간이 거기 있었다. 사람은 꽤 많았지만 시끄럽지 않았고 다들 무언가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비어있는 상태가 여백이 아니구나. 시각적으로는 조금 텅, 하지만 보이지 않는 몰입의 에너지가 채워진 상태.
'용기 내서 새로운 걸 시도한 이'에게 '말차 라떼'를 주문했다. 라떼 아래 티코스터에 쓰인 문장.
좋은 선택을 반복할 줄 아는 사람들
요즘 찾아 헤맨 무언가를 발견한 느낌으로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본다. 복잡한 인생이라는 질문의 단순한 대답. 어려울 거 없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택을 반복하며 하루를 채워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좋은 하루, 좋은 인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흐뭇한 웃음이 나던 평평의 스티커의 문장들은 요랬다.
서로의 사랑을 충전하세요, 충전한 사랑을 나눠 주세요
내가 매일 하는 것들을 내가 안다는 게 참 좋다
우리는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아무래도 좋은 걸 만들고 싶어요
좋은, 이란 뻔한 형용사가 카페 사방에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해왔는데 나쁘지 않았다. 뻔하지 않았다. 이미 이 공간에 한없이 너그럽기도 작정한 나였기에 뭐 하나 걸리는 게 없었다. 충전된 평화를 마구 나누고 싶었을 뿐.
'숭고한 리듬', '계절 길목' 같은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낯설지만 좋은 단어들과 라이터 위에 적힌 문구 '무언가에 불 붙이는 사람들', 아고고, 아차차, 휴우우로 구성된 하루 시간표까지 만나니 어린 아이가 된 기분. 정말이지 귀한 기분.
사실 전주로 떠나기 전 나는 완벽하게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매일을 열심히 채우는데도 공허함이 떠나지 않고 물음표만 남았다. 아빠의 투병 생활로 인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얕은 죄책감, 무기력함을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다들 이런 과정은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질문은 안에서만 맴돌았고 자꾸 움츠러 들었다.
전주 카페 평화와 평화에서 멍하게 앉아 있던 시간. 무언가를 쓰고 싶어질 때까지 '좋은 생각이 나는 연습장'을 오래 바라봤다. 말차 라떼를 온 몸에 흘려보내고 나니 솜사탕같은 작은 다짐들이 온 몸을 달콤하게 두드렸다.
좋은 선택을 반복해야지. 지도가 없어도 길을 걸어야지. 무언가에 불붙여야지. 용기 내 다시 시작해봐야지. 으라차!!!
어떤 우울, 어떤 무기력을 건드리는 건 때때로 짧은 노래 한 소절, 짧은 문장 하나임을 다시 알려 주기 위해 그 곳에 평화와 평화가 있었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