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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3대 감성 거리를 걷다

이 사람 간이 안 좋은가

by 심루이

요즘 전주 3대 감성 거리라 불리는 객리단길, 차이나거리, 웨리단길. 골목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옥마을보다 더 취향이었던 세 곳. 낯선 골목 걷기. 내가 여행에서 제일 신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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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주에서 가장 유명한 힙플 거리, 객사길. 고려와 조선 시대, 고을마다 설치했던 객사는 외국 사신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벼슬아치가 묵었던 숙소다. 전주 시내에도 이 같은 객사가 남아 있는데, 그 주변으로 전주 구도심 최대 번화가가 조성되어 ‘객사길’로 불린다. 최근에는 힙한 감성을 덧붙여 '객리단길'로 거듭났다. 한옥마을보다 트렌디한 분위기로 낡은 한옥과 구 상가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감성카페, 디자인샵, 수제 맥주바, 편집숍이 많다.


객리단길은 특히 밤이 화려했는데 전주 MZ들은 이곳에 다 모여있구나 생각했을 정도. 테라스가 있는 요리 주점 <세모>의 몽환적인 분위기, '그런거 없어요 그저, 삼겹살이 맛있을 뿐이예요'라고 적혀 있던 삼겹살집 <미성>, 사랑스러운 인테리어로 눈길을 끄는 젤라또 가게 <제니러브스젤라또> 모두 객리단길을 발랄하게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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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거리는 전주의 로컬 청년 창업 중심지로 떠오른 지역, 전주 웨딩의 거리, 바로 웨리단길이다. 첫인상은 밋밋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쏙 들었던 카페 <평화와평화>, 북카페가 있는 Since 1938 <금성당>, 전주 대표 수제맥주 노매딕 브루잉의 <노매딕 비어템플>이 있다. 비빔밥 명가인 <하숙영가마솥비빔밥>, <가족회관> 등이 있으니 맛있는 점심 혹은 독립서점 투어와 묶어 들러도 좋은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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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화교들이 모여 살던 전주 화교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리 전주 차이나거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화교 거리 중 하나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레트로 감성사진 스팟이 많다. 차이나거리 끝에 있는 다가여행자도서관은 전주 도서관 가운데 베스트로 꼽고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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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좋은 건 역시 그 안에 좋은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손잡이 아래 '이 문을 열면 평화가 시작됩니다'라고 적혀 있는 웨리단길 카페 문을 열며 진짜 평화가 시작된 것처럼, 오픈 시간이 아니라 입국 시간이 적혀 있는 다가여행자도서관에서 진짜 여행자의 기분이 된 것처럼.


별 것 없어 보이는 골목을 걸으며 오늘도 생각한다. 여행의 본질은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시선. 그것이 바로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가질 수 있는 마법의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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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위에서 독립서점 <일요일의 침대>에서 읽은 최진영 작가의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에 수록된 글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견딜 수 없을 때는 바깥으로 나가 걷자. 나무를 오래오래 하늘을 오래오래 바라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미울 때는 미워하자. 마음껏 미워하자.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때는 혼자 술을 마시면 된다. 단,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마셔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못했다면 후회하고 반성하자. 진심으로 사과하자. 사과조차 못 할 만큼 치명적인 잘못이라면 수습하려 서두르지 말고 상대에게 맡기자. 맡겨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했다면 고소해하자. 그것 참 고소하네 몰래몰래 음미하자.


사랑하는 사람이 귀여울 때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애잔할 때는 말없이 바라보자. 앞모습 말고 뒷모습을.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몰래 옆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 짜증 낼 때는 ‘이 사람 간이 안 좋은가’ 생각하자.


사랑하는 사람이 화를 낼 때는 숨어버리자.

나의 가장 깊은 곳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뿌리 끝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가 날 때는 숨을 쉬자.

들숨 날숨 반복해서 스무 번.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면 티슈를 건네고 안아주자.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워하면 미안하다고 말하자. 미안해. 내가 너와 다른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와 내가 다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


사랑이 자취를 감추면 기다리자.

사랑도 지겨워져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 때가 있겠지. 고치는 대신 새로운 에피소드를 쓰고 싶을 때가.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슬그머니 웃음 나고 뭉클한 문장들.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빠질 때마다 생각했다. 이 사람 간이 안 좋은가. 마인드 컨트롤의 비법은 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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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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