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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시간

전주 여행 아침 산책

by 심루이

종종 어떤 것들의 목록을 만든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나를 즉시 기쁘게 하는 것'들의 목록. 열 다섯가지 정도의 리스트인데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한다. 살펴보는 25년 가을 나.즉.기 리스트.


거리에 서서 먹는 꾸덕한 떡볶이와 어묵

브루마스터의 취향이 담긴 수제 맥주 한 잔

낯선 골목 걸으며 찰나 포착하기

바람 맞으며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책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책 발견하기

낯선 도시 여행 계획 짜기

여행지 아침 산책

추운 겨울에 먹는 순대국밥과 소주

마음에 쏙 드는 청바지와 레더자켓

음악 들으며 아침에 쓰는 모닝페이지

햇살 샤워 하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모금

기똥차게 맛있는 면 한 그릇

자기 전 침대에 파묻혀 보는 웹툰 (25년 가을 현재 최애 웹툰은 펜홀더)

야구 직관하며 목이 터져라 부르는 응원가

좋아하는 책 여러 번 읽으며 밑줄 치기


1년 전 목록과 거의 비슷하지만 몇 개가 새로 들어왔다. 올해부터 다시 빠지기 시작한 야구 직관 같은 것.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의 대답과도 같은 이 목록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 수록 좋다.


좋아하는 것들로 여행의 시간을 채우기로 작정했다. 나의 리스트는 대부분 여행과 어울리는 것들이기에. 그 중 제일은 여행지 아침 산책이다. 차갑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만나는 낯선 도시. 복잡하고 정신없는 한옥마을은 밤새 완벽한 쌩얼이 되어 나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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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한옥마을을 정처없이 걷는 것으로 아침 산책을 시작한다. 등교하는 아이와 엇갈리며 중앙 초등학교를 지나쳤다. 태조 이성계가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잔치를 열었다는 오목대에 들러 한옥마을을 내려다 본다. 운치있는 한옥 지붕 풍경을 마음에 새기고 인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촬영지인 전주 한벽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선 태종 4년(1404)에 문신 최담(崔霮)이 낙향하여 별장으로 지은 누각 한벽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전주천, 바위 절벽, 숲 등이 어우러져 ‘전주 8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천연 석회암 동굴 한벽굴 입구가 바로 드라마 주인공 백이진과 나희도가 서 있던 자리다. 그 곳에서 나도 사진을 한 장 찍고 전주천을 따라 걸으며 예술 공방이 모여있는 서학예술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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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29_233523470_09.jpg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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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29_233516954_20.jpg 한벽당과 한벽굴

‘선생촌’이라 불렸을 만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서학동 예술마을. 구도심의 쇠퇴와 함께 점점 쇠락한 이곳에 다시 변화의 바람이 분 건 2010년, 음악을 하고 글을 쓰는 부부가 예술마을에 터를 잡으면서였다. 이후 예술인들이 하나둘 이사를 왔고, 다양한 갤러리가 들어서며 예술 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지금은 미술, 음악, 공예, 문학 등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다. 여유가 있다면 이 동네를 천천히 거닐며 서학예술마을도서관과 사진미술관 두평갤러리에 들어가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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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과 한벽당 사이 언덕길에 자리한 전주 대표적인 감성 마을인 자만벽화마을도 있다. 2012년부터 전주시와 지역 예술가들이 협력해 낡은 주택 벽면에 벽화와 설치미술을 그리며 조성된 이곳은 알록달록한 벽화와 카페, 공방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자만(自慢)’은 ‘스스로 자랑한다’는 의미로 '예술로 자부심을 가지는 마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달동네 커피숍과 예쁜 벽화가 많아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을지도. 빡빡한 일정이라면 들리지 않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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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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