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길 잘했어
1.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은 세게 뭉클해진다. 핑 맺힌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왜 눈물이 났어?라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나도 모르겠으니까.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웃으며 지나쳤을 길 위에서 문득 그렇게 된다. 내 감정과 마음에 오롯이 몰입해서, 지난날이 그리워서, 풍경이 사무치게 좋아서, 멜로디가 한없이 쓸쓸해서 그런 걸지도 몰라. 무엇보다 들여다봐주기를 오래 기다렸던 내 안의 무언가를 문득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 혹은 그리움 혹은 용기 혹은 사람 어쩌면 그 모든 것. 익숙한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하러 낯선 곳으로 떠나고 눈물이 맺혔던 찰나의 모습으로 도시를 오래 기억한다.
귀에는 가수 오존 버전의 <기억이란 사랑보다>가 흐르고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이 떠오르던 참이었다. 나도 물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골목은 깊었고 햇살은 좋았다. 전주의 첫 번째 찰나.
2.
혼자 여행을 마무리하고 라한호텔 로비에 앉아 원씨부녀를 기다렸다. 곧 해가 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 체크인으로 북적이던 사람들이 사라진 호텔 로비에는 나와 햇살만이 남았다. 눈에 담기는 시를 닮은 어마어마한 아름다움.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설렘과 늦기 전에 이 광경을 보여줘야 한다는 초조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다행히 원심부녀는 늦지 않게 전주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캐리어를 끌며 얼른 로비에 가야 한다고 서두르는 내게 심이가 물었다.
-체크인도 했다며 로비에는 왜 가?
-지금 거기 엄청난 게 있거든, 시간 지나면 못 봐.
그들을 창가 햇살 쪽으로 밀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첫 전주 풍경을 즐기는 그들을 감상한다. 마음에 초조함이 사라지고 흐뭇함이 가득 차올랐는데 나는 이것이 사랑임을 안다. 지금이 아니면 물처럼 흘러가버리는 아름다움을 알고 지금 꼭 함께 하고 싶은 것.
창에 적힌 '전주 오길 잘했지?'라는 문장이 나도 모르게 이렇게 읽혔다.
'살아 있길 잘했지?'
3.
나.즉.기 리스트로 가득 채운 전주 여행. 자신이 언제 제일 신나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의 여행은 실수는 있어도 실패하기 어렵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기쁨과 즐거움을 야무지게 아는 사람의 인생은 도무지 실패와 어울리지 않는다.
4.
하루에도 몇 번씩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를 듣는다. 예전의 나는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환자의 안위를 기도하며 내가 저 안에 있지 않다는 것에, 지금의 평화에 안도했다.
안도는 이제 다짐이 되었다. 저기 누워서 누군가의 손을 꼭 잡게 될 그 언젠가까지 나답게 살아내야지.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옅도록 사랑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지, 그런 생각을 한다.
5.
전주 여행의 결론과도 같은 최진영 작가의 문장이다.
나는 나를 믿어요.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직 나를 믿고 있어요. 부디 내가 나를 계속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실망하면 어떤가요. 어차피 나만 아는 일. 괜찮을 겁니다.
좋은 선택을 반복할 나를 조금 더 믿어주기. 더 진득하고 더 섬세한 믿음으로. 실망하면 어때, 어차피 나만 아는 일인데. 갑자기 나만의 비밀이 생긴 즐거운 기분. 실패와는 영원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매일 스스로의 기쁨에 마음을 쓰며 나아가야지.
정말이지 살아 있길 잘했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