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김영갑과 후지이 카제
단순한 사진작가를 넘어 '비에이라는 마을을 창조했다'라고 평가받는 인물, 마에다 신조. '탁신관'은 1987년 폐교한 구 치요다 소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마에다 신조의 사진 갤러리다.
비에이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린 마에다 신조는 원래 도쿄 무역회사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사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40대 중반, 비에이를 처음 만난 건 49세 때의 일이다. 1971년 우연히 들른 비에이의 구릉지 풍경을 보고 '여기라면 평생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고 확신하고 이후 30년 가까이 비에이 언덕을 누비며 사계절을 기록한다.
개척할 탁(拓), 참 진(真)으로 구성된 탁신관은 '진실을 개척하는 집'이라는 뜻. 그가 '유행을 좇는 사진이 아니라, 100년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비에이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처음으로 '개척'해냈음을 상징한다.
탁신관에는 그림같은 카페 <SSAW BREW>가 있고 바로 근처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자작나무는 소리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이 숲길을 걸으면 발밑의 눈 밟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고요를 만날 수 있다.
김영갑 작가님의 제주
마에다 신조의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제주를 열렬히 사랑했던 김영갑 작가와 그의 갤러리 <두모악>이 떠오른다. 외지인이면서 특정한 땅의 풍경을 지독하게 사랑하다 그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의 풍경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세상에 알린 이들.
밥 사 먹을 돈이 생기면 필름을 사고, 고구마나 당근으로 끼니를 때우며 오직 사진에만 몰입한 김영갑 작가. 제주의 바람과 안개에 스스로를 가둔 그는 루게릭 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카메라 셔터를 누를 힘조차 잃어버린다. 몸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 손수 돌을 나르고 정원을 가꿔 사진 갤러리 두모악을 완성시켰다.
일상을 바쳐 '영원'을 붙잡으려 했던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기다림'이다.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연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의 산물이다." (김영갑 작가)
"풍경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자연이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마에다 신조)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들은 그곳에 수천 번 올랐다.
내 안의 평화, 후지이 카제
비에이와 후라노의 끝없는 눈밭과 어울리는 후지이 카제(Fujii Kaze)의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와 재즈틱한 피아노 선율로 남다른 철학을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가수다.
오카야마의 시골 마을 사토쇼, 아버지가 운영하는 찻집에서 독학하며 12살 때부터 피아노 커버 영상을 SNS에 올린 후지이 카제는 2020년 데뷔 앨범 <Helping Ever Hurting Never>를 발표하며 신드롬을 일으킨다.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스토리텔링은 '집착'을 버리는 비움의 철학. 히트곡 상당수가 연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에게 바치는 고백이라고 하니 이 사실을 알고 듣는 후지이 카제는 새롭다.
그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지금도 집에서 소박하게 요가와 명상을 즐기며, 채식을 실천하는 방구석 예술가. 그의 이름 '카제(風)'는 일본어로 바람을 뜻한다. 홋카이도의 광활한 벌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경계가 없고 자유로운 그의 음악. 비에이 여행의 배경음악으로 추천.
-가든: '내 안의 정원을 가꾸자'는 내용, 여행자의 마음을 평온하게 다독여주는 노래
-시누노가 이이와(죽어도 좋아): 흔히 사랑 노래로 오해받지만, 사실은 '내 안의 높은 자아를 향한 헌신'을 노래한다.
-미치테유쿠(Overflowing): 영화 <4월이 되면 그녀는(April Come She Will)>의 주제가. 비움으로써 채워진다는 가사가 비에이의 하얀 눈밭과 어울린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구절은 '손을 비운다, 가벼워진다, 차오른다'.
영화 <4월이 되면 그녀는(April Come She Will)>는 카와무라 겐키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카와무라 겐키는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