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하프타임
스스로와 제일 좋은 친구가 되는 일
어린 시절 '나는 왜 내가 나로 태어났는지'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이 질문을 마흔 넘어 다시 꺼낸다. 나는 왜 나일까.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해야 진짜 행복할까.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와 제일 좋은 친구가 되는 일. 어쩌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
당신은 그 사람과 아직 데면데면한가요, 아니면 꽤 친해졌나요.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인생의 무수한 갈림길에서 '나다운 선택'을 오롯이 나의 의지로 할 수 있다면 인생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기준이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거기에서 답을 찾으면 인생이 꼬여버린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평생 함께 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내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면 함께 걸어갈 이를 고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나만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 가치가 비슷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 자신이 선택한 일들에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
지금 이 순간을 나답게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처럼 읽는 책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책을 읽는 대신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이번 여행에 챙긴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도 여러 번 재독한 책이다. 이 책에서 딱 한 문장만 골라야 한다면 이것이다. '이 삶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 경험하는 일을 배워야만 한다.’.
이 일을 제일 잘 배울 수 있는 것이 여행이다. 끝이 정해져 있는 대부분의 여행은 미뤄두기를 허락하지 않고 여행자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최고의 것을 발견하고 느끼기 위해 집중하니까. 일상에서는 내가 맞이하는 매일이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임을 종종 잊어버린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관심을 끊고 지냈다. 요즘은 눈을 뜨자마자 달력을 확인한다. 오늘의 고유성을 자각하고 싶어서다. 어제와 비슷한 하루가 시작됐지만 사실 그건 착각이야. 2026년 1월 12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어쩌면 하프타임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86 정도?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86이 떠올랐다. 너무 큰 숫자가 아닐까 염려하며 대답했지만 아이는 왜 그렇게 짧아?라고 되물었다. 아이는 '96'이란다.
머리에 제일 처음 떠오른 '86'이라는 숫자를 말하고 보니 올해 내 나이가 정확히 그 숫자의 절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절반이나 아니,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구나. 축구 경기라면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고 야구 경기로 따지면 5회 초 즈음인데 생각해 보니 그땐 누구도 경기 결과를 확신하지 않는다. 올해 나의 한화 이글스는 '약속의 8회'에 꽤 많은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러니 5회 초면 이제 경기가 슬슬 재밌어지는군,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내 인생도 이제 슬슬?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