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 결혼기념일과 우리의 이야기
축하를 자주 하는 편이다. 아주 사소한 일들로도 조각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작은 파티를 한다.
심이가 체육 시간에 달리기 1등을 했다거나, 이달의 학생으로 뽑혔다거나,
베이징에 무사히 돌아왔거나, 10월의 마지막 날이거나, 11월의 첫날이거나,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축하할 만한 일들은 사실 차고 넘치니까.
김춘수 시인의 글귀처럼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름을 부르면 꽃이 되는’ 아름다운 일들을
잘 찾아서 함께 축하하며 늙어가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일지도 모른다.
# 남편 출근 차를 얻어타고 함께 나가서 회사 근처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같이 점심을 먹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산책하던 길, 쏟아지던 평일 낮의 햇살. 코로나로 떨어져 있던 8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이런 아름다운 길을 '함께' 걷는 일이었다. 가을의 행복한 베이징.
# 춘이 맛있다고 종종 얘기하던 회사 앞 20원짜리 '过桥米线(구어치아오미시앤)'. '다리를 건너다'라는 뜻을 가진 운남 쌀국수로 강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따뜻한 국수를 들고 다리를 건너던 아내의 마음이 담긴 요리다. 나도 비슷하게 회사 근처 카페에서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중국어로 놀던 중.
기도도 자주 하는 편이다.
성당에는 잘 가지 않는 날라리 신자지만 아이와 나 사이에는 우리만 아는 기도 타임이 있다.
바로 시계 숫자가 우리 생일을 가리키거나 (1월 4일이 생일인 나는 오후 1시 4분, 심이는 1시 5분) 혹은 보름달을 봤을 때다.
누구에게 비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함께 기도한다.
가끔 실눈을 뜨고 기도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본다. 자못 진지하다.
"어떤 소원 빌었어?"하고 물어보면 ‘비밀’이라는 아이의 대답.
"그럼 엄마도 말 안 해줄래, 흥!" 하면
아이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듯이 "또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겠지, 뻔하지!"라고 이야기한다.
(아닌 척 하지만 맞음.)
# 10주년 결혼기념일, 아이는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며 차돌박이 쌈 꽃다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퇴근하는 아빠에게 무릎 꿇고 쌈을 건넴... 'Will you marry me?'의 고기 버전이라는데... 이런 아이디어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거니?ㅎㅎㅎ
이런 사소한 축하와 기도들로 지난 10년을 무사히 잘 지나왔다.
아주 사소하게 서로를 아끼고, 돌보고, 그리워하면서.
# 상해 양청호 따자시에와 황주 조합. 따자시에는 산 채로 배달된다. 열심히 살아 움직이는 게들을 큰 냄비에 맥주와 함께 넣고 열심히 삶아준 춘. 내가 먹어본 그 어떤 크랩보다 진득한 살~ 게 딱지에 밥과 참기름 넣고 싹싹 비벼 5개를 해 치운 심이. 색이 고운 황주는 마치 약을 마시는 것처럼 편안한 맛.
# 10주년 결혼 기념 파티는 꾸이지에 '후따' 3호점에서 마라샹궈와 함께 했다. 딱딱한 마라샹궈 안의 귀한 살을 발라내 내게 건네주는 그대의 찐 사랑- 자기는 운전 때문에 사이다 마시면서 나에게 계속 맥주 따라주는 춘추루춘. 이쯤 되면 사소하지 않은 거대한 사랑입니다. *.*
아주 오래전에 강남역 사주 카페에서 재미로 둘의 궁합을 봤을 때
사주 김 선생님은 핀잔을 주며
"말하면 들을 거야? 그냥 니네는 친구처럼 멋대로 살 거잖아, 말한다고 들을 것도 아니면서 뭘 물어봐"라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지금 우리 모습과 딱인 것만 같다.
세상의 기준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
누군가를 닮으려 노력하거나 흉내 내지 않고, 우리 몫의 삶을 찾아가면서.
그냥 우리처럼, 우리라서, 우리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렇게 잘 살아가보고 싶다.
# 아침으로 순두부를 먹으면 속이 뜨끈해지면서 든든해진다. 거친 하루가 몰아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던 나이지만 베이징에서는 왠지 아침을 찾아 먹게 된다. 찻잎을 넣고 삶은 '茶鸡蛋'도 빼놓을 수 없지. 우리 집 앞 란저우 라멘 집의 아침 조식.
늘 내게 순두부처럼 따뜻하고 든든한
당신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나도 당신과 아이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다.
# 사소한 마음들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지난 10년 동안 매일 그것을 느끼며 살아왔다.
#베이징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