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 누려보는 아침의 기쁨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내게 이른 아침이 생겼다.
밤이 되면 정신이 말똥 해지는 저녁형 인간이라 그간 아침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었다.
회사와 육아에 정신없을 시절에도 8시 넘어서 느지막이 일어나곤 했었다. (10시 출근의 기쁨)
하지만 새벽과 아침에 대한 로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새벽만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그 어떤 상쾌함을 사랑하기 때문이랄까.
일찍 시작할수록 하루가 길어지는 마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베이징에서 백수가 된 이후 처음으로 6시 30분 기상의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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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생활을 시작했던 2017년 봄,
8시쯤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주고 거리를 둘러보면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총총걸음을 걷고 있는 중국 남자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과연 저들은 이 아침에 어디를 다녀오는 것인가? 비닐 속에 든 건 과연 무엇인가?
궁금해하며 비닐봉지 안을 자세히 봤다.
만두? 꽈배기? 우유? 죽? 뭐 그렇게 생긴 것들이 잔뜩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그들의 아침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마트나 시장, 혹은 좌판대에서 아침을 사서 집으로 간다. (대부분 남자들이다)
이런 말이 있다.
早餐吃好, 午餐吃饱, 晚餐吃少
아침은 잘 먹고, 점심은 배부르게 먹고, 저녁은 작게 먹자
중국 사람들에게 아침은 실로 중요한 끼니다.
아침을 종종 건너 띄던 춘도 회사에서 “넌 왜 아침을 안 먹냐?”는 이상한 눈초리를 종종 받곤 했다.
가장 보편적인 아침 조합은 이미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요우티아오(油条)와 또우장(豆浆)이겠지만
(갓 튀긴 요우티아오를 따끈한 또우장에 찍어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심지어 중국 맥도날드나 KFC에서도 먹을 수 있다! )
내가 도전하고 싶던 메뉴는 아침으로는 다소 공격?적인 후추로 만든 매운 국물 ‘후라탕(胡辣汤)’이다.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시안’편을 보며 제일 먹고 싶었던 요리다.
당시 ‘후라탕’은 처음 보는 요리였다. 베이징에 살면서 중국요리를 꽤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다시 한번 중국 땅덩이의 거대함과 식음료의 다양성을 절실히 깨닫고 새로운 맛에 조금 더 깨어 있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는…
하지만 아침 빈속에 매운 후추탕을 먹는다니, 특이하기도 하지.
속 괜찮은가? 걱정됨과 동시에 매콤한 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니 아침 후라탕은 베이징에서도 매우 흔한 조식 중 하나였다.
여러 한약재와 후추, 고추를 넣고 우려낸 국물에
아주 작게 조각낸 탱글탱글한 젤리 식감의 고기, 각종 야채, 땅콩 등을 넣고 진득하게 끓인다.
(식당마다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물은 달라진다)
전분이 섞여 있어 걸쭉한 느낌이 있다.
매운맛을 달래기 위해 요우티아오나 전병, 빠오즈 등과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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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길을 걷다가 사람이 북적대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후라탕과 요우티아오를 주문했다.
이날의 식당은 동호만 근처의 '京门老爆三'이라는 훠궈 식당이었다.
(알고 보니 평점 4.5점이 넘는 인기 식당이었다)
중국에는 아침에는 조식을 팔고 점심부터 본인들의 메인 요리를 파는 식당들이 많다.
후라탕과 요우티아오를 주문하고 장아찌를 챙겨 자리에 앉는다.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으니 새콤 매콤 뜨근한 후라탕이 식도와 위를 타고 흘러내린다.
매콤한 후추향이 확 느껴지며, 탕 속에 숨어있던 땅콩을 씹으니 고소하다.
매콤함과 고소함의 묘한 조화.
한 그릇 비우니 속이 든든해지지만 왠지 매운 후추가 잠들어 있던 나의 입맛을 깨워줘 다른 것들도 먹어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식욕을 돋우어주는 느낌이랄까.
#베이징에서 beijinger/생활 여행자로 매일 열심히 걸으며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