酸辣粉_먹을 수록 중독되는 그 맛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와 비슷하게 엄마는 면을 싫어했다.
어렸을 때 2주에 한번 토요일 점심에는 라면을 먹었는데 그건 내가 제일 싫어한 메뉴였다.
엄마가 끓여준 라면이 정말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자란 국물에 팅팅 불어 터진 면을 먹고 있자면 ‘맛없다’라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다. 훗날 엄마의 라면에는 면 요리에 대한 적절한 애정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빠가 바깥세상에서 ‘라면 꼬들꼬들하게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알아온 후 끓여준 라면은 신세계였다.
매일 먹고 싶은 맛.
'쑤안라펀(酸辣粉)'을 처음 먹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름 그대로 시고(酸), 매운(辣) 면.
새콤하고 매콤하고 쫄깃하고…
한 입 넣자마자 '이건 한국에는 없는 맛인데? 그런데 너무 맛있잖아!' 감탄했다.
오감을 깨워주는 맛의 신세계 느낌.
베이징에서 엄마와 처음으로 한 외식이 바로 12원 짜리(한국돈 2000원) 쑤안라펀과 탄탄면이었다.
(중국어도 중식도 잘 모를 때라 간단한 면요리가 만만했다. )
면을 싫어하는 엄마와 타국에서 생판 처음 보는 면을 함께 먹고 있는 우리 모습이 신기했는데
더 신기한 일이 있었다.
엄마가 당연히 싫어할 거야!라고 짐작했던 ‘쑤안라펀’을 너무 맛있게 드시는 거였다.
‘쑤안라펀’은 ‘탄탄면’과 쌍벽을 이루는 사천 지방의 새콤달콤한 당면 요리다.
중국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면은 미엔(面), 쌀이나 전분으로 만든 당면 같은 국수는 펀(粉)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쑤안라펀도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아는 당면보다 조금 더 굵은 면으로 젤리처럼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다.
쑤안라펀의 육수는 배추 절임의 국물로 한국 냉면에 동치미 국물을 쓰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한다. 그 육수에 다진 마늘과 파, 야채, 자차이(榨菜), 볶은 콩, 두부피, 고수, 샐러리, 꽈배기 과자 등 다양하게 들어간다.
* 榨菜(zhàcài): 한국의 김치와 비슷하게 쓰촨 지방에서 많이 먹는 절임 야채, 우리가 잘 아는 일명 '짜샤이'
새콤한 맛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으로서 처음 먹으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당기는 중독되는 맛이다.
짭짤한 자차이와 고소한 땅콩의 환상적인 조화로 면을 먹다 보면 땅콩을 계속해서 건져먹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시큼하면서 고소한 요상한 맛!
엄마와 함께 먹던 화리엔 지하의 '娇媚'는 금세 사라졌지만, 쑤안라펀은 사실 중국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간편식으로 많이 출시되어 있어 집에서도 5분 만에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우리가 주로 먹는 제품은 ‘食族人’ 제품인데 처음 용기를 뜯었을 때 감동했다.
면에 들어가는 수프 종류가 무려 6개… 게다가 젊은이들에게 먹힐만한 귀여운 용기 디자인까지!!
맛도 가게에서 먹는 맛에 뒤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엄마 입맛에는 밀가루로 만든 면보다는 쫄깃한 당면이 맞았던 거였다.
'이상하게 쑤안라펀이 종종 생각난다'는 엄마를 위해 작년에는 한국행 캐리어에 간편식도 몇 개 챙겨가 맛있게 먹었다.
가끔 사랑하는 사람들은 음식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함께 먹던 음식을 다시 먹을 때 제일 그리우니까.
‘나중에 이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꼭 함께 먹어야지!’ 다짐하며 새로운 음식을 만나고,
그 바람을 이뤄가며 나이를 먹어간다. 실로 행복한 나이 듦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쑤안라펀을 먹으며 면 요리를 질색하는 울 엄마를 떠올려 본다.
#베이징에서_beijinger_생활여행자로_매일_열심히_걷고_먹고_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