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사랑으로 탄생한 면요리_过桥米线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 뿐이다.
발터벤야민
떨어져 지낸 지 두 계절이 지나다 보니 남편이 가끔 사이버 인간처럼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회사 동기로 만나 친구처럼 지내 온 우리는 'TMI' 트렌드에 맞춰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곤 했었는데,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의 시시콜콜함을 못마땅해 한 코로나가 등장하고, ‘베스트 프렌드’ 뺨치던 우리 사이가 사이버 친구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생활의 리듬이 달라지니 걸려온 영상 통화도 놓치고, (보고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받지 ‘않’았던 적도 있,,, 쿨럭), 매일 공유하던 스케줄도 띄엄띄엄 공유되었고(“나: 와, 인천 멀긴 멀다, 우리 도착했어” “春: 응? 오늘 어디 가?”), 주로 하던 영상 통화라는 것이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적합한 수단이 아니라 피상적인 대화들로 일관할 때도 있었다. (“뭐 먹었어? 얼른 자~ 보고 싶다, 사랑해” 끝. 매우 러블리한 문장들을 로봇처럼 주고받음) 당시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깊은 대화들은 엄격하게 차단되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春이 '회사 앞에 마라샹궈가 맛있어, 촨촨을 먹었어, 음식 이름에 이런 역사가 있대' 등등을 이야기할 때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들었다. 이미 베이징 생활과 중식에 익숙해진 나는 큰 흥미가 없었다. 그렇구나/ 맛있겠네/꼭꼭 씹어 먹어 등의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해준 것이 전부였달까. 하지만 코로나를 겪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듣는 베이징 일상들은 날 설레게 만들었고, 베이징에 돌아가면 그곳을, 그 맛을 꼭 함께 해보리라 다짐했다.
그랬기에 ‘베이징 귀국 버킷리스트’의 제일 위 칸에는 '실제 인간 春’과 평범한 평일 점심에 한 끼의 식사를 하고 근처 거리를 함께 걷는 일이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 일상의 행복을 내가 너무 소홀히 했다는 자각 속에서 내가 점심시간에 불쑥 회사 앞에 가더라도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적절한 날짜를 타진해보았다.
여러 가지 메뉴가 물망에 올랐지만, 우리는 얼큰한 국물이 해장에 끝내줘서 春이 술 먹은 다음 날에는 꼭 먹곤 하던 20위안짜리 운남 쌀국수 ‘궈치아오미시앤(过桥米线)’부터 먹어보기로 했다. 궈치아오미시앤은 운남 지방의 대표 면 요리로 유래부터 부부의 사랑과 정이 느껴지는 음식이라 잉꼬부부로 거듭날 우리에게 매우 적합한 메뉴였다. 닭 육수를 쓰는 이 쌀국수의 특징은 육수와 면, 고명이 따로 나온다는 점이다. 예전에 마을 밖의 강가에서 공부에 몰두하던 남편에게 매일 식사를 챙겨주던 헌신적인 부인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따뜻한 밥을 먹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부인은 육수를 끓이고 그 위에 기름을 부어 오랜 시간 뜨거움을 유지하도록 한 뒤 쌀면과 고명 재료를 따로 가져가서 남편이 공부하던 곳에서 면을 바로 익혀서 줬다. 매일 국수를 가지고 다리를 건넜다 하여 ‘다리를 건너다(궈치아오/过桥)’는 단어에 쌀면이라는 뜻의 '미시엔(米线)'이 붙었다.
春은 버섯이 토핑으로 추가된 기본 국수를 주문했다. 한입 먹어보니 과연 시원하고 얼큰한 육수와 탱글탱글한 면발까지… 입맛에 딱 맞았다. 해장에 딱이기도 하지만, 백주 한 잔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남편 회사 앞에서 대낮 백주는 차마 애주가인 나도 해내지 못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 그릇을 정신없이 먹고 우리는 회사 앞 거리를 잠시 산책했다.
따종디앤핑에서 '过桥米线' 베스트 리스트를 보고, 근처에 있는 걸로 골라가는 것이 제일 안전하겠다.
나는 요즘도 가끔 눈물, 콧물 다 빼면서 읽은 책 ‘숨결이 바람 될 때’의 마지막 구절을 생각한다. (이 책은 젊은 나이에 폐암에 걸려 어린 딸과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두고 눈을 감아야 했던 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가 쓴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책의 마지막은 아내가 마무리했다.)
나는 당신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폴과 특별한 사랑을 나눴던 아내가 마지막으로 되고 싶었던 존재는 동반자나 지지자가 아니었다. 바로 '목격자'였다. 서로가 얼마나 성실하고, 아름답게 잘 살아왔는지 혹은 얼마나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해 줄 수 있는 존재, 부부.
사건, 사고에서나 쓰이는 줄 알았던 ‘목격자’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줄줄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았더랬다.
언젠가 서로의 빈자리를 마주했을 때 서로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목격자가 될 수 있도록 살아가 보자는 나의 다짐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 노력은 결국 스스로의 삶에도 최대한 깨어있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부부의 길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니까.
나란히 곁에서 걷는 우리가 이내 너무 익숙해져 빈곤한 관계가 되지 않도록 '당연하지 않은 존재'로 당신을 인식한다.
작년에 심하게 바빴던 春은 평일 저녁에는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못했었다. 한 달에 1-2번 정도 심이가 자기 전에 들어왔으니 말 다 했다. 워낙 혼자 잘 지내니 아무렇지 않다가… 여름 즈음이었나, 연거푸 회식을 하고 늦게 온다는 春에게 내일은 한 번쯤 속상한 얘기를 해보리라 다짐하고 잠든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문 앞에 뒀던 쓰레기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연이은 야근과 회식으로 녹초가 된 몸으로 새벽에 쓰레기를 버려 준 그 마음 씀씀이에 그간 쌓인 서운함이 풀리고 오히려 미안해졌다. (베이징 저희 집은 현관 바로 앞에 쓰레기통이 있긴 합니다만) 뭣도 모르고 술김에 버린 쓰레기가 우리 사이의 엄청난 위기 모멘트를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는 아직 모를 테지만 어쨌든 그랬다. (사실 위기가 있었다는 것도 그는 모른다. 남편들이여, 새벽 1시에 아내 몰래 쓰레기를 버립시다!)
春은 미치도록 바쁠지언정 늘 육수, 고명과 면을 따로 준비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세심한 ‘생활 동반자’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흔하지 않은 이른 퇴근,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오면(역시 시시콜콜 여전히 TMI…) 끓여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다시 끓인다. 집에 들어오면 따뜻하게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이런 사소한 마음들이 사실 우리 관계의 전부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먹은 회사 앞 궈치아오미시엔은 육수, 고명, 면 다 한 번에 끓여 한 그릇에 나왔다는 사실.
맛만 있으면 됐지 뭐.
#베이징에서_beijinger/생활여행자로_매일_열심히_걷고_먹고_쓰기
#生活探索者 #北京探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