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베이징] 코로나 블루와 소울푸드 ‘마라탕’

진짜 용기에 대하여

by 심루이

코로나로 인해 한국 생활이 대책 없이 길어지며 아이는 종종 우울하다고 했다. ‘우울’이라는 단어의 무서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기는 표정 짓기 대회’라도 있으면 세계 챔피언이라도 될 것 같은 흥이 많은 내 아이가 내뱉는 두 글자는 마음을 철렁하게 했다. 온라인 수업을 잘 들으며 과제들을 의욕적으로 하다가도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고, 내 방과 학교에 가고 싶다고 눈물지을 때도 있었다. 워낙 활동적이고,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이라 코로나가 주는 슬픔은 더한 듯 보였다. 놀이터라도 나가서 놀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금세 깔깔대고 웃었지만 아이가 처음 언급한 그 감정에 꽤나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것도 자유롭게 할 수 없어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 생활 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작은 테두리 안에서만큼은 최고로 적극적이 되어야 했다. 수줍음이 많아 처음 보는 친구에게 말을 걸 때 늘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던 아이는 어느새 ‘적극성의 화신’이 되어, 놀이터나 양재천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발견하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공격적으로 다가가 “너 나랑 놀래?”라고 추파를 던졌다. 가끔 “너랑 같이 놀기 싫은데?”라고 거절의 메시지를 받을 때에도 예전처럼 상처받거나 울지 않고 바로 다음 타깃을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또 지나니 내 아이는 동네 작은 놀이터 안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고, 용기 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의 이런 성격 변화 또한 ‘코로나 블루’가 아이에게 준 흔적이다.


일생을 ‘귀차니즘’에 허덕이던 나도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놀이터에서 만난 심이 또래 엄마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만나고 싶은 친구는 먼 길이라도 연락해 만나러 갔다. 특히 베이징에 진짜 자기 집이 있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큰 힘을 주었다. 천재지변 같은 고난 속에서 위로는 정말 별다른 게 아니었다.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인정,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이기적인 확인을 우리는 스스럼없이 주고받았다. 제어하기 벅찬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담백하게 고백하며 힘듦을 감추기보다는 내뱉어서 휘발시켰고, 찰진 욕 한 바가지로 웃어넘겼다.


희망과 체념이 적당히 섞인 시간들. 하릴없는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하나라도 더 나누려는 동지들이 있었다.




아이는 베이징에 가면 ‘마라탕(麻辣烫)’을 제일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중식이다. ‘곧 먹을 수 있을 거야’라고 밝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다시 베이징 왕징 소호의 음악 분수를 보며 마라탕을 먹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8개월 만에 다시 내 집에 돌아와 바로 ‘아이칭 마라탕’에 갔다.


마라탕의 어묵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비행기 일정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혹시 내가 무증상 감염자는 아닐까’, ‘우리는 무사히 격리 생활을 끝낼 수 있을까’,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지만 늘 내 마음속 다이어리 한편에 진하게 적혀 있던 조마조마하던 물음들을 비로소 날려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세 개의 계절을 지나 다시 맛본 마라탕은 그 물음들에 대답해 줬다.


‘이제 괜찮아. 돌아왔어,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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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제일 많이 먹은, 이 한 끼의 식사로 중국 복귀를 비로소 실감했다.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아이에게 세상은 아직 낯설고 두려운 것 투성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곧 마흔을 앞둔 나에게도 그 배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이징에서_beijinger/생활여행자로_매일_열심히_걷고_먹고_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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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왕징의 상징과도 같은 소호, 아주 오랜만의 음악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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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의 상징(우리에게만 ㅎㅎㅎ)과도 같은 '아이칭 마라탕(爱情麻辣烫)'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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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람이 붐비는 이곳,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아서 한국인이 참 많다. 번호표를 받아들고 두근두근 설렘, 매운맛의 정도는 3가지
2017-06-25-17-30-01.jpg 나는 고기나 생선보다는 야채, 어묵, 버섯이 더 맛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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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요우티아오를 마라탕에 넣어 먹는 중국인들이 신기했는데 이 또한 꿀맛이긴 하다. 웨이라로 시켜서 옆에 있는 고추기름을 또 팍팍 뿌려 먹는다.
ak.jpg 맵기를 달래줄 음료로 나는 맥주와 왕라오지, 심이는 늘 복숭아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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