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베이징] 디탄 공원과 작가 스티에셩

책 이름을 딴 용허궁 근처 카페 我与地坛_THE CORNER

by 심루이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당신에게 제일 소중한 공간은 어디예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모교 운동장이라든지, 어릴 때 살던 집 계단이라든지, 집 근처 산의 첫 번째 정자라든지… 누구에게든 자신만의 소중한 공간이 있기 마련인데, 의미 있는 공간은 사람의 내밀한 과거나 비밀과도 연계되어 있기 마련이라, 친해지고 싶은 사람 앞에 앉아 있으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늘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내 질문을 받아 들었을 때 황당해 할 상대방의 얼굴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주변 맛집도, 가을 단풍이 예쁜 곳도 아니고, 나에게 제일 소중한 공간이요? 소주도 들이키지 않고 왠 뜬금없고 주책없는 질문인가요?




디탄(지단/地坛公园) 공원에 갔다. 그전까지 내게 그저 용허궁 근처 하나의 공원일뿐이던 디탄 공원. 스크 언니가 공원 옆 카페 <我与地坛_THE CORNER>를 소개해 주고, 스티에셩(사철생/ 史铁生) 작가의 책 ‘我与地坛(나와 디탄)’을 선물해 줬다. 그 순간 내게 디탄 공원은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에서 불우하고도 행복했던 수필가 스티에셩이 휠체어를 타고 줄곧 드나들던 공간이 되었다. 빨간 벽돌이 아름다운 카페 <我与地坛 THE CORNER>는 작가의 책에서 이름을 따왔다. 디탄 공원은 작가에게 생명이자, 계절이자, 친구이자 모든 것이었다.


两条腿残废后的最初几年,我找不到工作, 找不到去路,忽然间几乎什么都找不到了,我就摇了轮椅总是到它那儿去,仅为着那儿是可以逃避一个世界的另外一个世界

두 다리를 못쓰게 된 후 첫 몇 해는 나는 일도, 가야 할 길도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거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휠체어를 굴리며 늘 이곳으로 왔다. 이곳은 한 세계에서 도피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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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고인이 된 스티에셩




디탄 공원은 베이징 남부의 '티엔탄(천단/天坛) 공원'과 대칭을 이루는 곳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티엔탄'이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라면 이곳은 땅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티엔탄 공원은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제단으로 면적만 천안문 광장의 6.8배인 273만m2이다. 그에 비해 디탄 공원의 규모는 소박하고 조촐하다. 하늘과 땅의 차이일까? 그런 연유로 티엔탄 공원은 늘 관광객들이 붐비지만 디탄 공원은 관광객보다는 산책과 계절을 즐기는 중국인들이 많다. 조금은 썰렁하고 허름하지만 일상의 멋이 살아 숨 쉬는 디탄 공원은 '史先生'이 매일 휠체어를 끌고 나오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을 네모라고 믿었다. 그래서 티엔탄 공원의 상징인 ‘원구단’은 거대한 원형이고 디탄 공원의 ‘방택단’은 네모 모양이다. 디탄 공원에서 황제가 땅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방택단’과 땅의 신을 모신 ‘황기실’을 보려면 별도의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 중국인이 예전에 믿던 땅의 신은 소와 돼지라고 하는데, 농업 사회 시기 중국인들의 소박한 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20201030_123421.jpg 빨갛고 파랗고 초록의 조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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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탄 공원에 비해 여러모로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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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즐기는 중국인들을 많이 만났다




스티에셩은 20살 즈음 하반신 불구로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되었다. 젊음과 열정이 불타오르던 시기에 평생 한으로 남을 장애를 짊어지게 됐으니 본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히 상상해 보기도 어렵다. 작가의 책 ‘我与地坛’에는 그로 인한 치명적인 괴로움과 고통이 절절히 표현되어 있다. 그는 공공연히 ‘나의 주업은 병드는 것, 부업은 작가(职业是生病, 业余在写作)’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집 근처 디탄 공원은 휠체어를 끌고 갈 수 있는 집 근처 공원이자, 정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내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몇몇 전당과 올라갈 수가 없어서 여러 각도에서 바라다보기만 해야 했던 제단을 제외하면, 나는 공원의 모든 나무 아래에 다 가봤고 거의 모든 풀밭 위에 내 휠체어 자국을 남겼다. 나는 그 어느 계절, 어떤 날씨, 어느 시간에나 이곳에 머물렀다. 어떤 때는 잠시 머물렀고 또 어떤 때는 온 사방에 달빛이 가득할 때까지 머물기도 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어느 모퉁이에서 몇 시간씩 죽음이라는 사실에 몰두했고 같은 방식과 인내심으로 내가 왜 태어났나에 골몰하기도 했다.


我与地坛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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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_121734.jpg 가을을 한껏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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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_122249.jpg 아름다운 가을 날이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울린 부분은 작가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매일 디탄 공원으로 떠나는 아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행여나 나쁜 마음을 먹지는 않을까, 내내 가슴을 졸였다. 자신의 괴로움에만 천착해 어머니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던 철없는 아들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절절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스티에셩의 산문에서 그 깨달음이 잘 드러난다. (아주 대강의 해석)


她不是那种光会疼爱儿子而不懂得理解儿子的母亲。她知道我心里的苦闷,知道不该阻止我出去走走,知道我要是老呆在家里结果会更糟,但她又担心我一个人在那荒僻的园子里整天都想些什么。我那时脾气坏到极点,经常是发了疯一样地离开家,从那园子里回来又中了魔似的什么话都不说。母亲知道有些事不宜问,便犹犹豫豫地想问而终于不敢问,因为她自己心里也没有答案。她料想我不会愿意她限我一同去,所以她从未这样要求过,她知道得给我一点独处的时间,得有这样一段过程。她只是不知道这过程得要多久,和这过程的尽头究竟是什么。每次我要动身时,她便无言地帮我准备,帮助我上了轮椅车,看着我摇车拐出小院;这以后她会怎样,当年我不曾想过。


그녀는 아들을 사랑할 줄만 알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어머니는 아니었다. 그녀는 내 마음속의 괴로움과, 내가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 집에 있으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공원에서 나 혼자 하루 종일 무엇을 생각할지 걱정했다. 그때 나는 극도로 예민했고, 미친 사람처럼 집을 나갔다. 공원에서 집에 돌아와서도 귀신에 홀린 듯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주저하다 감히 묻지 못했는데 그녀 스스로도 해답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동행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같이 가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내게 혼자만의 시간과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 시간의 결말이 어떨지 몰랐다. 내가 밖으로 나갈 때면 그녀는 말없이 준비를 도왔는데, 나를 휠체어에 앉도록 거들었고, 내가 휠체어를 밀고 작은 뜰을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이후 그녀가 어떤 모습일지 그땐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有一回我摇车出了小院;想起一件什么事又返身回来,看见母亲仍站在原地,还是送我走时的姿势,望着我拐出小院去的那处墙角,对我的回来竟一时没有反应。


한 번은 뭔가 잊은 적이 있어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를 보내던 자세 그대로 내가 돌아온 담 모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되돌아왔지만 잠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在那段日子里——那是好几年长的一段日子,我想我一定使母亲作过了最坏的准备了,但她从来没有对我说过:“你为我想想”。事实上我也真的没为她想过。那时她的儿子,还太年轻,还来不及为母亲想,他被命运击昏了头,一心以为自己是世上最不幸的一个,不知道儿子的不幸在母亲那儿总是要加倍的。她有一个长到二十岁上忽然截瘫了的儿子,这是她唯一的儿子;她情愿截瘫的是自己而不是儿子,可这事无法代替;她想,只要儿子能活下去哪怕自己去死呢也行,可她又确信一个人不能仅仅是活着,儿子得有一条路走向自己的幸福;而这条路呢,没有谁能保证她的儿子终于能找到。——这样一个母亲,注定是活得最苦的母亲。


나는 그 시간에 분명 어머니께 최악의 준비까지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나를 좀 생각해 줘”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없었다. 사실 나도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너무 어렸고, 어머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운명의 공격에 정신이 혼미해져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고, 아들의 불행이 어머니에 이르러서는 그 몇 배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녀에게는 갑자기 하반신 불수가 된 스무 살 아들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아들이 아닌 본인이 하반신 불수 이길 바랬다. 그러나 대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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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12-09-32.jpg 멀리서 아들을 몰래 바라보고 있었을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숨바꼭질이었을지도.




카페 <我与地坛 THE CORNER>는 작가의 글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구석이 있었다. 자신의 취향과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심정이랄까. 커피 맛과는 상관없이 모든 공간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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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걸려 있는 사진들도 마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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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 스티에셩의 책들이 꽂혀 있다. 스크 언니가 선물로 준 그의 수필집. 감동 ㅠㅠㅠ



다시 디탄에 간다면 휠체어의 무거운 흔적들을 따라 나는 더 천천히 걷겠다. 그가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였던 그곳에서 바람이 숲 속을 지나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曾有过怀疑:我在地坛吗?还是地坛在我?

我已不再地坛,地坛在我。


나는 의문을 품곤 했다. 내가 디탄에 있나? 아니면 디탄에 내 안에 있나?

나는 이미 디탄에 없다. 디탄이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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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_beijinger/생활여행자로_매일_열심히_걷고_먹고_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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