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베이징] 누룽지는 바사삭, 어머니는 드르렁

大吃兄의 누룽지 과자

by 심루이

'베이징에서 네가 한 제일 훌륭한 발견이 무엇이냐' 누군가 물으신다면 너무 많아서 머리를 한참이나 굴려 봐야겠지만, 역시 ‘누룽지 과자’다. 별 것 아닌 이 과자에는 사람을 이끄는 마력이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사삭’ 경쾌한 소리와 함께 누룽지가 알알이 입 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심심한 맛인데?’ 하다가 ‘어라, 생각보다 맛있네?’ 하며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3 봉지째 까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심심하고 담백한데 먹기 시작하면 절대 끊을 수 없는 누룽지를 살짝 튀긴 이 과자(괄호 치고 열량 폭탄)!


좋은 거 발견하면 온 동네방네 소문내는 내 특성상 정말 여러 명의 사람에게 이 과자를 추천했는데 백이면 백 다 좋아했다. 한때 정말 진지하게 이 과자를 떼다 한국에 팔면 어떨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누룽지 과자 대표님 이메일 알아봐야지… 아냐 중국어를 조금 더 연마하다가 보내야겠어… 하다가 2년이 지났다.) 엄마가 특히 이 과자를 좋아했는데 한국에 돌아갈 때 12박스(박스 하나당 12 봉지인 건 비밀), 그러니까 캐리어 하나에 몽땅 이 과자를 들고 가셔서는 하루에 한 봉지씩 아껴서 드신 전력도 있다.




춘이 베이징행 발령을 받았을 때 새로운 나라에서 생활해 본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3년 동안 심이 육아에만 전념해 온 엄마에게 자유를 선물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첫 손녀와 함께 전에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셨지만 엄마의 주름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졌고, 나는 과연 효녀인가, 불효녀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엄중한 검증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제 엄마 그만 고생시키고 이모님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베이징행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의 20%는 “엄마, 이제는 친구들과 여행도 갈 수 있어! 소리 질러!”정도.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과 빗나가기 마련이다. 엄마는 우리를 낯선 타국 땅에 보내고 심이가 보고 싶어 상사병에 걸렸고, 불면증도 더 심해졌다. 괴물 같은 체력의 5살 아이가 사라지니 체력은 남아도는데 마음은 걱정과 슬픔과 그리움으로 뒤범벅…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진행사항이긴 했다. 그러고는 적절한 수면을 위해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어 엄마의 상황을 세세하게 알 수 없었던 나는 베이징에서 발만 동동거리며 걱정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소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다름 아닌 누룽지 과자의 바사삭 소리…가 아니라 엄마의 코 고는 소리라 대답 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불면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나서는 엄마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신호인 그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으니까! 코로나로 인해 친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나는 그 달콤한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달콤하다니 이 무슨 변태 같은 위대한 사랑인가 싶지만, 정말 그랬다. 어느 깜깜한 새벽엔가는 내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서 방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소리를 히죽거리며 가만히 듣고 있었고, 화장실이라도 갈 때면 행여 엄마가 깰까 토끼발을 하고 살금살금 걸었다. 어머니의 드르렁 소리가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어린 시절, 잠들었다 하면 15시간이고, 20시간이고 자버리는 나를 보고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안 깨고 잘 수가 있냐?”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아무도 나에게 아침이 왔다고 알려주지 않는데 내가 무슨 수로 깨?”라고 뻔뻔하게 대답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진심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몸을 뒤흔들며 “이보게 친구, 아침이란 게 왔어, 해가 중천에 떠 있다고!”라고 격렬하게 알려 주지 않는다면, 꿈속의 세계를 달콤하게 활보하고 있는 내가 무슨 수로 자연스럽게 눈을 뜰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정말 잠을 사랑했다. 먹는 것도 좋고, 걷는 것도 좋고, TV 드라마 시청도 좋았지만, 자기 전 포근한 이불을 목까지 돌돌 감고 하나의 김밥이 되어 얼굴만 빼꼼히 내밀며 수필 따위를 읽는 그 순간에 비할 순 없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방에 들어와 이불 위를 툭툭 두드리며 ‘사랑해 예삐, 좋은 꿈 꿔, 잘 자’ 등의 굿나잇 인사를 해주시곤 했었다.




이렇듯 등만 대면 자고, 차만 타면 자고, 심지어 신혼여행 때 하와이에서 오픈 카를 타면서도 자고 있던… (이건 좀 심하긴 했…) 틀림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는 인구 상위 3%’에 들어가는 내가 잠이 오지 않아서 괴로운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보고도 알지 못하는 아픔’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지만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우리만의 기도 타임에 심이와 나는 할머니의 잠에 대해 기도하곤 한다.


“우리, 할머니 푹 주무실 수 있도록 기도하자”


베이징과 서울은 950km나 떨어져 있는 데다 중국발 미세 먼지가 하늘에 가득하니 이 기도가 서울까지 잘 도착할지는 의심이지만 우리의 기도는 사뭇 진지하다. 엄마가 내 이불을 톡톡 두드려주던 그때의 굿나잇 인사처럼 오늘도 엄숙하고 달콤하게 이어진다.


엄마, 오늘은 부디 푹 주무세요.




누룽지 과자는 여러 브랜드에서 나오지만 ‘大吃兄’에서 나온 것이 제일 깔끔하고 맛있다. 맛있지만 신중하게 맛을 보기를 권한다. 엄마는 베이징에 오면 늘 2킬로 정도 살이 쪄서 돌아가셨는데 거기에 일조한 것이 이 과자다!


2018-11-29-15-20-32.jpg 베이징에서 내가 발견한 아름다운 과자들
2019-01-28-21-29-48.jpg 그중 1등은 단연 이것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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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음식과 같이 먹어도 찰떡 궁합이다.


#베이징에서_beijinger/생활여행자로_매일_열심히_걷고_먹고_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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