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류얼시, 서점의 온도
여기 류얼시라는, 인구 1500만 명의 대도시 광저우에 사는 30대 중반의 괴짜 청년이 있다. 몸집이 작고 비쩍 말랐으며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기 좋아하고 빵 모자를 즐겨 쓴다. … 그는 광저우에 집도 차도 가족도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여섯 곳의 1200북숍 뿐이다. 1200북숍의 모토는 처음부터 “광저우의 밤을 위해 한 개의 등불을 켜는” 것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등불은 여섯 개가 되었고 그 등불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이 밤을 새우며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심야 좌담회를 열고, 이제는 독서 토론회까지 한다.
서점의 온도, 역자 후기 중
지지난 주 춘이 갑자기 “다음 주에 광저우로 출장 갈 것 같아”라고 말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피곤해서 어째, 우쭈쭈"라는 반응을 보였을 테지만, 나는 “그래? 꼭 가! 가면 나 대신 이곳에 꼭 들려줘”라고 대답하며 흥분하고 말았다. 바로 내가 정말 가고 싶던 류얼시의 서점 ‘1200북숍’은 광저우에만 있기 때문이다. (14년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7곳 중 하나다.)
처음 이 서점을 알게 된 건 ‘밀리의 서재’에서였다. 내게 번역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준 ‘번역가로 사는 법’의 저자 김택규 님의 번역인데다, 서점이 주제라니, 구미가 당기는걸?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슬슬 읽기 시작했다가 중간에 탄성을 질렀다.
아 너무 좋다, 좋아. 이곳은 정말 내가 꿈꾸던 공간이야.
‘1200북숍’은 류얼시라는 한 청년이 광저우에 낸 24시간 서점이다. (6개의 지점 중 일부만 24시간 운영)
-무협 소설과 자기 계발서는 팔지 않는다.
-배낭여행객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한다.
-낮에 돈을 벌어 밤에 온정을 베푼다.
그는 세 가지 방침으로 광저우에서 여섯 곳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일류 대학을 나와 일류 회사에 입사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류얼시는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불쑥 타이완으로 떠나 51일간 1200킬로미터를 걸어 타이완 섬을 일주했다. 그때 수많은 타이완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줬고, 이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95년에 오픈해 24시간 운영하며 이제는 타이완의 문화 성지가 된 타이베이 ‘청핀 서점 둔난점’에 매료되었다. 그리하여 용감한 청년은 본인이 직접 '광저우의 등불' 같은 곳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류 씨는 2014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은 뒤 '1200북숍'을 오픈했다. (오픈 방식도 어쩜 찰떡같다) 서점은 그가 대만 도보 일주를 하던 당시 완주한 1200킬로미터를 기념해 거기에서 따왔다. 이곳의 가장 특이한 점이라면 여행자 혹은 방랑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소위 소파방이라고 불리는) 운영이다. 이곳에서 숙박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서점으로 보내면 소파방에서 잠을 청할 수 있다.
24시간 서점은 어둠이 깔린 뒤, 그 도시에 등불과 머물 곳을 제공하죠. 일종의 위로이자 보호이기도 하고요. 타이베이에 그런 정신적인 등대가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 부러웠어요. 광저우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24시간 공간을 운영하며 필요한 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철학은 보기에는 이상적이고, 멋진 일이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인력 운영도 그렇지만 좋은 의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까.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되는 것은 만국 공통 문화…) 류얼시도 다른 이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 어린아이나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할아버지가 소파방에 죽치고 있어 고객들에게 항의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어려움을 겪음에도, 낯선 이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건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지나가는 노인을 부축해 길을 건너는 것과 같다. 나는 1-2인분의 시간을 더 쓰겠지만 나와 노인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까지 모두가 기분이 좋아진다. 소파 하나를 배낭족에게 제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접대하느라 조금 번거롭긴 하겠지만 낯선 이의 우정과 이야기를 선물로 받을 것이다. 길가에서 떨고 있는 부랑자에게 헌 옷을 주는 것도 똑같다. 나는 옷을 정리하고 세탁하느라 시간이 들겠지만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 준 덕에 나도 따뜻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서점은 깊은 밤일 수록 더 인간 세상과 흡사하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마주쳐도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몇 날 며칠 밤을 동행하며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는 것보다 서로를 잊는 것이 더 낫다는 이치를 이해했다.
서로를 위로하는 것보다 서로를 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는 관계라니… 이 정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시간의 깊이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말 잘 듣는 춘은 광저우로 내려간 그날 밤 새벽 서점을 방문해 내가 정말 보고 싶던 ‘새벽 1시 30분의 1200북숍’의 정경을 휴대폰에 정성껏 담아서 보내왔다. 서점은 알콜을 마실 수 있는 Bar도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했다. 내가 꿈꿔온 술 마시며 책 읽는 공간이다. 시간이 늦은 만큼 엎드려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배낭여행객이든 잠시 거처를 잃은 사람들이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이곳으로 모일 것이다. 그들은 잠시 쉬었다가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아침이 되면 세상으로 다시 나갈 것이다.
심야의 서점에서는 비밀과 비밀, 인생과 인생이 마주친다. 이곳은 인간 세상의 축도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 마주쳐도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즐겨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 것을 행운이라 여기며 그들과 벗하며 몇 날 며칠을 보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광저우라는 도시에 가보고 싶었다. 이런 서점을 가진 광저우 사람들과 류얼시의 신념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혹시 광저우 외에 다른 지역에도 서점을 내실 계획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고 한다. “아뇨, 1200북숍은 광저우의 것입니다."
그는 1200북숍이 광저우의 자랑거리가 되고, 그로 인해 광저우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바람 했다. 그의 바람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도 그리고 8살 심이도 그중의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광저우에 가게 된다면 제일 먼저 1200북숍에 들리겠다. 가서 소설이 담긴 약 봉투를 들고, 서점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을 류얼시를 꼭 찾아보고 싶다. 이 매력적인 공간도 공간이지만, 당신의 용기와 신념에 반했다고 꼭 말하고 싶다.
1200북숍에서는 약 봉투에 소설을 담아 준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프면 책을 보며 치유하라는 의미인데 경주의 ‘어.서.어.서(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도 비슷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춘은 내게 ‘서점의 온도’ 중문판과 류얼시의 또 다른 책인 ‘人在书店’을 선물해 주었다. 자유 시간도 없이 빡빡한 출장 일정에 잠을 줄여가며 1200북숍에 들려서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주고, 선물까지 사 주다니 감동.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선물. 심이에게는 광저우 타워와 성심대성당이 그려진 예쁜 엽서와 중국판 트럼프 카드를 사 왔다. 심이는 자기가 본 엽서 중에 가장 예쁜 엽서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는 원카드의 지옥으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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