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커피이몽 (咖啡异梦)
‘나에게 술은 삶을 장식해 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 삶을 움직여 주는 동사다’
라는 김혼비 작가의 문장을 읽었을 때 완벽히 공감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빠진 하루는 뭐랄까. 솥에 들어가기 전 밧줄을 끊어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영 신통치 않은 상하이 민물 게 '따쟈시에(大闸蟹)' 같달까. 차가운 책상에 얼굴 측면을 대고 엎드려서 멍을 때리고 있는 중2 때의 나 같달까. 생사에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활력이 떨어지는 느낌. 쏟아지는 햇살 맞으며 시원한 아메리카노 혹은 입김 불며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주는 행복은 때로 상상을 초월하곤 한다.
한 중국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쓴 아메리카노를 왜 그렇게 마시는 거야? 아메리카노가 제일 싸서 그거 먹는 거지?”
10번 커피를 주문하면 9번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아메리 애호가’로서 진심으로 버럭 할 뻔했다.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니야. 그깟 가격 얼마나 차이 난다고. 아메리카노가 진짜 맛있어서 마시는 건데? 쓰지만 맛있잖아. 아니 쓰니까 맛있는 건가? 나는 절대 시럽도 넣지 않는다고”
의기양양한 나의 대답에 중국 친구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라테도 아니고 아메리카노가 맛있다고? 안 쓰다고? 진짜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학교의 중국 선생님들도 늘 차만 마셨다. 커피는 쓰다고, 밤에 잠 안 온다고, 차가 몸에 좋다고. 뭐 다양한 이유에서. 그들은 매번 우롱차나 밀크티를 시켰다.
문화의 발달이 제품의 발달을 이끌기 마련이니 베이징에서 맛있는 커피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어느 38위안짜리(한국 돈 6,400원 정도) 카페라테는 작은 물컵에 담겨 나와서 나를 놀래켰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유리컵에 따뜻한 카페라테라니 그냥 별로였다) 이걸 이 돈 주고 사 먹느니 집에서 캡슐 커피를 먹겠다며 네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그 후 Metal Hands, Las Coffee, Voyage Coffee, 아라비카, 루이싱커피 등 괜찮은 커피들을 많이 발견했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들리는 곳은 역시 ‘스타벅스’다.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최소한의 맛을 보장해 주니까. 가격도 아메리카노 Tall 사이즈 28위안(4,700원) 정도로 무난하다.
스타벅스를 생각하면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게 이름이다. 스타벅스를 중국 사람들은 ‘싱바커(星巴克)’라고 부른다. ‘스타’라서 별이라는 뜻을 가진 ‘星’에다가 ‘벅스’라서 비슷한 발음의 ‘巴克(bake 바커)’를 붙여두었다. (정작 스타벅스는 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허먼 멜빌의 소설을 좋아한 스벅 창업주가 소설 속 일등 항해사인 ‘스타벅’에 복수형 S를 붙인 것이지만 중국인들은 상관 안 할 테지, 흣)
뜻과 발음이 혼재되어 있는 희한한 방식인데 거의 모든 브랜드들이 이런 식이다. 맥도날드=마이당라오, 코카콜라= 크어코우크어르어, 까르푸=찌아르푸, KFC=컨더지 등등. 음역은 소리라도 비슷하지, 의역은 진짜 골 때린다. 페이스북=리앤슈(얼굴책)
외국인들에게 중국어가 가장 어렵게 다가오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은데 나도 처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딱히 일관성도 통일성도 찾을 수 없는 이 방법이 너무 생뚱맞고 어려워서 ‘아 진짜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 마음이었달까.
어쨌든 몇 개월 지나다 보니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싱바커에서 메이스(美式)’를 시키는 것이 익숙해졌다. 마음에 쏙 드는 스타벅스들도 발견하기 시작했는데, 내게 베이징 Best 스타벅스를 꼽아보라면 전문대가(前门大街) 큰 길가에 있는 전통 중국식 인테리어의 스타벅스와 바로 옆 베이징팡(北京坊)에 있는 3층짜리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798 예술거리에 있는 매장, 강변을 끼고 있는 솔라나쯤 되겠다. 그 외에도 내가 못 가본 예쁜 매장들도 넘칠 테지만.
798 艺术区店에서 발견한 스벅 매장 그림들. 쭈그리고 앉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마지막 케리 센터 빼고 내가 좋아하는 스벅들이 다 있었다.
술을 정말 좋아하는 친한 친구는 '남은 생에 술이랑 커피 중에 굳이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쩌겠냐'라는 나의 가혹한 질문에 너무 힘들겠지만 커피를 선택할 거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둘 중에 정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나도 커피 쪽에 손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형용사 없이는 살아도 동사 없이는 힘드니까. 부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이래 최대 난제인 이 질문만은 평생 만나지 않기를!
* 중국 스타벅스의 아침은 배달원들로 가득 차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도 시켜 먹는 문화는 거의 충격이었다. 게다가 따끈한 상태로 배달되는 건 어떻고.
* 스타벅스는 1999년 베이징 국제 무역 센터에 첫 매장을 연 이후로 현재 중국 내 180개 도시에서 약 4,400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상해 여행에서 시간 계산 실수로 세계에서 가장 큰 스벅 매장에 가보지 못한 것이 아직 한으로 남아 있다. 축구장 절반 크기라던데,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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