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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Jan 28. 2021

축축했던 첫 만남

 

어릴 때 강아지를 키운 적이 몇 번 있다. 주위에 강아지와 함께 유년시절을 공유하며 자라온 친구도 있었고 나이가 많은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도 있었기에 강아지는 오래오래 함께 사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집에 온 강아지들은 속상하게도 나와 오래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첫 반려견이었던 백구는 아빠가 산책을 시키려 백구를 데리고 현관문을 나선 뒤 열쇠로 문을 잠그는 사이에 밖으로 달려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내가 애지중지해 마지않던 시츄 쿠키는 너무 짖는다는 이유로 아빠가 시골 작은 할머니 댁에 보내버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할머니는 도시 아파트에 사는 큰 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쿠키의 행방은 아직도 모른다. 백구가 집을 나갔을 때는 마음이 아팠고 쿠키가 시골로 보내졌을 때는 화가 났다. 그렇게 아끼던 내 강아지를 시골로 보내버린 아빠에게 화가 났고 그런 아빠에게 끝까지 맞서 쿠키를 지켜내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쿠키를 보내고 다짐했다. 내 스스로 온전히 강아지를 책임지고 보호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2013년의 어느 여름, 그날도 어김없이 습관처럼 인터넷으로 강아지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는데 말티즈 새끼들 가정 분양 글이 눈에 들어왔다. 흰 털뭉치에 바둑알 세 개가 쪼로록 박힌 생김새. 언젠가 강아지를 키운다면 흰둥이 같은 하얗고 뽀얀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게다가 가정 분양이라니 애견샵을 혐오해 애견샵이 위치한 쪽의 길로는 걷지도 않는 나로선 몹시 마음에 드는 조건이었다.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아직 변변찮은 직업이 없었다. 영어강사로 약 1년을 일했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뒤 취업 준비를 하며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과연 내가 강아지를 키울 자격이 될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만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잠깐 들여다본 게 전부인 바둑알 같은 까만 두 눈망울이 눈에 아른거렸다. 안 될 건 또 뭐람? 내가 지금 당장 취업 준비 중이라고 언제까지나 준비만 하다 그칠 것도 아니고, 호주라는 낯선 나라에 다짜고짜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왔으니 생활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뭐 정 안되면 다시 영어강사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조금 덜 먹게 되더라도, 까만 바둑알 3개가 박힌 흰 털뭉치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맛있는 것만 배불리 먹이며 행복하게 해 줘야지. 다음날 아침 아르바이트 출근길에 분양 글을 올린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내일 데리러 갈 수 있을까요?     


까만 바둑알 세 개


지금이야 유기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만약에 둘째를 들인다면 포인핸드를 통해 입양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의 나는 애견샵만 아니면 괜찮다 싶은 마음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고, 다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강아지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분양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있나 싶었다. 물론 생명에 값을 매기고 물건처럼 판매하는 것이 조금 꺼림칙하긴 했으나, 어미 개의 출산에 들어간 비용, 강아지를 2달 남짓 키우느라 들어간 비용, 어미 개와 육아를 분담하며 들어간 노동력 등을 고려하면 돈을 받는 것이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양 글을 올린 남자를 만나자마자 나는 그 어떤 것도 타당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에 강아지 용품이 아무것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여서 퇴근길에 용품과 사료를 사고 그 다음날 강아지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연락을 받은 강아지 분양자가 오늘 당장 데리러 오라고 하는 것이다. 아직 용품도 없고 데리고 올 이동장 조차 없다고, 준비해서 내일 가겠다고 했으나 사료랑 패드는 본인이 소량 챙겨줄 것이고, 차로 데려다줄 테니 이동장이 없어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전개가 당황스러웠으나 분양자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기에 나는 그날 퇴근 후 분양자의 집 근처라는 노량진 역으로 갔다. 분양자는 차번호를 알려주며 몇 번 출구에 있으니 도착하면 전화를 하라고 했다. 해당 출구로 찾아가 분양자가 알려준 차번호를 찾았다. 검정색 소나타. 분양자에게 전화를 걸어 도착했음을 알리고 차에 올라탔다. 까무잡잡한 피부톤에 왠지 모르게 능글거리는 눈빛. 불편했다. 게다가 부모님 차가 아닌 생판 남의 차에 탄 것이 처음이었다. 나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와 대화를 하면서 가기도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가기도 어색해 어쩔 줄 몰라하며 창밖만 바라보는데 분양자가 실실 웃으며 아니 안 그래도 마지막 남은 한 놈을 아무도 안 데려가서 이 놈을 어디다 갖다 팔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마침 연락을 줘서 반가웠다고 입을 뗐다. 그 사람에게 강아지는 그저 판매용 물건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속이 메슥거려 차에서 내리고 싶었으나 처음 보는 건장한 남자의 차 안이었고, 이미 해가 져서 주변이 어두컴컴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길도 모르는 낯선 동네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 상황에 잔뜩 겁을 먹고 주눅이 든 나는 묵묵히 분양자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피서 중


현관문이 열리고 주인의 뒤에서 낯선 사람을 발견한 어미 개는 극도로 경계하며 앙칼지게 짖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나와 같은 낯선 사람이 집에 찾아와 새끼를 한 마리씩 데리고 사라졌을 것이다. 어미 개는 새끼 주위를 맴돌다 다시 내 앞에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새끼를 집어 들어 나에게 걸어오는 주인 옆을 좇으며 앙칼지고 애처롭게 짖었다. 가정 분양은 말만 가정 분양이지, 샵에서 돈을 주고 어미 개를 강제로 교배시킨 뒤 ‘가정’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돈 받고 파는 것이었다. 물론 집에서 키우던 개들이 자연스레 교배를 해서 그렇게 태어난 새끼들을 분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어미 개에게서 마지막 남은 새끼를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분양자가 실실 웃으며 했던 말이 뇌리에 박혀 만약 내가 지금 그냥 집에 가버린다면 이 사람은 강아지를 정말 어디에 갖다 팔아먹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잠자코 분양자에게 돈을 건네고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더 이상 짖지 않는 어미 개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정말 미안해, 네 새끼 내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해 줄게. 정말 미안해.   

  

지금은 사망한 돌고래 인형


집까지 태워다 준다던 분양자는 돈을 받고 난 뒤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역까지 태워다 줄 테니 알아서 가라고 했다. 바라던 바였다. 다만, 분양자의 말을 듣고 이동장도 없이 갔다 보니 내가 가진 건 달랑 에코백뿐이었다. 그나마 가방 속 짐이 거의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강아지를 에코백에 넣고 지하철에 탑승했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는 에코백에 쏙 들어갔다. 강아지가 조금만 참아주길 바라며 핸드폰으로 분양자가 올린 다른 게시글들을 찾아보았다. 1년 단위로 말티즈 새끼 가정 분양 글을 올려온 것을 발견했다. 다시금 어미 개의 앙칼진 울음이 귀에 맴돌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      


역에서 나와 집에 걸어가는 길, 에코백이 축축해졌음을 느꼈다. 지하철에서 끼깅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얌전히 있던 강아지가 오줌을 싼 것이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집까지 뛰어가 서둘러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엄마 없는 낯선 환경에 강아지는 한동안 축축한 에코백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와 연두의 축축했던 첫 만남, 연두는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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