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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Jul 22. 2021

집에서 닭발 만들어 먹기

소싯적 한신포차에 미쳤었던 나


닭발을 처음 먹은 게 언제였을까? 아무래도 10대 때는 아니었던 것 같고 20살에 성인이 되고 처음 사귄 구남친(aka.쓰레기)과 한신포차에서 먹은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엔 징그럽다고 생각했고 먹기가 더럽게도 번거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일단 한신포차의 그 양념.. 진짜 말해 뭐해 졸이면 더더욱 감칠맛 나는 그 양념! 나는 속절없이 닭발에 빠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구남친이 제발 좀 다른 데 좀 가자고 애원 비슷한 것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한 번 꽂히면 구남친의 의견 따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병에 걸렸기 때문에 가볍게 무시했을 듯하다. 하지만 한신포차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화장실. 아무래도 다들 젓가락 한 두 개쯤 가볍게 떨어트릴 정도 혹은 떨어트린지도 모를 정도의 취기가 오른 상태로 화장실을 찾았기 때문에 줄은 도무지 줄어들 생각을 안 하고. 터질 것 같은 방광으로 겨우 내 차례가 되어 화장실에 가면 막혀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차츰 한신포차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그곳만 한 양념 맛을 내는 집을 찾지 못해 차츰 닭발과도 멀어져 버렸다.


그러다 다시 나를 미치게 만든 곳이 있었으니 바로 신당동 우정. 본래 떡볶이 집인데 국물 닭발도 팔고 있다. 매운맛과 순한 맛. 이게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맛이다. 신당동 떡볶이집들이 대부분 닭발을 파는 듯하다. 공통점은 입에 넣자마자 뼈가 녹듯이 발골될 만큼 푸우우우욱 끓인 닭발이라는 것. 안 그래도 뼈 하나하나 발라먹기 귀찮았는데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스르륵 뼈가 발골되니 너무 좋더라. 게다가 감칠맛 미치는 그만큼 오지게 조미료가 들어갔을 그 양념 맛. 평소 조미료라면 환장하게 좋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무조건 좋았다. 거의 주 2회는 포장했던 것 같다. 근무하다 지루할 때면 우정 닭발을 떠올리면서 힘을 내곤 했을 정도니까. 이번엔 애원하는 구남친도 없었다. 당시에는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어서, 닭발 얘기를 꺼내지도 않고 혼자서 얌얌 먹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풀에 내가 지쳐버렸다. 매번 신당동까지 가는 게 일이었기도 하고, 어느 순간 스르륵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닭발보다는 발골이 귀찮더라도 쫄깃하니 씹는 식감이 있는 닭발이 땡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우연찮게 당시의 외국인 남친이 곱창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 근처 단골 야채곱창집에 그 자식을 데려가자 이 맛있는 걸 그동안 혼자 먹고 있었냐며 환장하고 흡입하길래 이 녀석 닭발 러버의 싹이 보인다 싶어 나는 사뭇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식은 역시 닭발도 좋아했다. 그 후 우리는 그 자식의 집 근처 아씨닭발의 단골이 될 뻔하다가 언제 한 번 닭발 뜯다 대판 싸운 뒤 다시는 가지 않았다. 더럽게 헤어졌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시 가지 않을 예정이다. 음, 어쩌다 얘기가 여기까지 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 틀어둔 음악 때문에 정신이 잠깐 나간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홍콩에 가서도 닭발을 먹었다. 굴소스와 간장소스 베이스의 단맛 20 짠맛 80 느껴진 짭조롬하고 오동통 쫄깃했던 닭발. 처음 먹어 보는 맛이라 맛있었고 닭발이라 맛있었다. 베트남에서도 먹었다. 한국에 튀김 닭발이라는 것이 그리 유명해지기 전, 다낭의 어느 닭 전문점 메뉴에서 프라이드 치킨 핏을 보고 닭발을..튀겨? 도라이들인가 싶어 주문했다가 도라이는 바로 여태 이 맛있는 튀김 닭발을 감히 떠올려보지도 못한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국하기 3시간 전까지 시켜먹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 20대 10년을 털어 닭발을 좋아해 온 역사를 바탕으로 나는 집에서 닭발 해 먹기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동생과 근처 시장 정육점에 가서 닭발 2키로를 샀다. 유튜브에 레서피를 검색해보니 보통 1키로만 하던데, 막상 1키로를 보니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아 괜히 감질맛만 나고 끝날까 봐 2키로를 샀다. 음, 혹시라도 닭발을 집에서 해 먹으려거든 1키로를 사시길. 1키로만 해도 한신포차보다 더 나온다. 유튜브를 참고해 지금까지 닭발을 3번 정도 만들었다. 매운 닭발도 해 보았고 홍콩식 간장 닭발도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매운 닭발은 파는 닭발의 감칠맛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다시다를 때려 넣어도 파는 정도의 감칠맛은 나지 않았고, 페퍼론치노 없이 파는 정도의 매운맛을 낼 수도 없었다. 아쉬움을 안고 간장 닭발에 도전했다. 홍콩에서 간장 닭발을 먹은 게 벌써 3년 전이라 기억을 다듬어 만든다고는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냥 내가 먹고 싶은 맛으로 만든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개꿀맛이었다는 것.



실컷 닭발 해먹는 얘기 써놓고 정작 사진은 안 찍어 시켜 먹은 닭발 사진으로..


집에서 닭발을 해보니, 잡내 잡으려고 초반에 삶는 게 조금 귀찮지만 생각보다 난이도 있는 음식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시장에서 긴 했지만 발톱이 제거된, 뽀얗게 세척까지 된 채 팩에 담긴 닭발이어서 딱히 더 엄청나게 신경 써서 씻을 필요도 없었고, 보통은 생강을 넣어 잡내를 잡던데 나는 그날 먹을 게 아니면 채소나 과일류를 사두지 않을뿐더러 생강을 사려고 보니 무슨 손바닥만 한 거대한 생강이 무한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매대에 누워있길래 닭발을 한 10인분 해서 올드보이처럼 닭발만 먹을 것도 아니고 저 생강을 사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기도 아니거니와 일단 저런 모양새의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싶지 않아 생강이나 생강가루나 뭔 차이가 있겠나 싶어 생강가루와 된장만 넣고 끓였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 나는 비염이 있는 사람이다. 잡내 잡기 용도로 생강가루, 된장을 넣고 초벌로 15분 정도 삶고, 찬물에 뽀득뽀득 행궈준다음 양념 넣고 조리하면 끝!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닭발을 원한다면 10분 정도 더 삶으면 된다.


닭발 2kg를 동생과 각각 1kg씩 질리도록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또다시 먹고 싶어 졌다. 생리 불순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며 pms의 정점을 찍고 있는 요즘이라 지금 내 뇌는 거의 식욕의 숙주 수준이란 말이다. 아, 그래서 오늘 뭐 먹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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