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이야기 [2]

by 강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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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서로의 대화는 메말라갔다. 항상 비슷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간혹 소녀가 이런저런 말들을 했지만 대부분 이미 전에 했던 똑같은 말이었다. 소년은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소년은 소녀와의 만남이 귀찮았다고 자주 생각했다. 소녀는 매일 숲 속을 같이 거닐자고 했지만 실제로 그곳을 걷는 횟수는 점점 줄어갔다. 소년은 소녀가 걷는 방식과 웃을 때 보이는 잇몸이, 지겨운 질문들과 그를 불편하게 하는 소녀의 미소가 싫었다.



조금은 쌀쌀한 해 질 무렵 소년과 소녀는 숲 속을 걸었다. 소년은 손이 시려서 그의 손을 외투의 주머니에 꼭 집어넣었다. 그들은 목적지 없이, 말없이 그저 걸었다. 그러다 소녀는 기다란 나뭇가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몇 마디의 잔소리를 한 후 그녀를 일으켜 앉혔다. 그가 손수건을 건넸고 소녀는 피가 흐르는 그녀의 다리를 묵묵히 닦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는 철없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소녀는 소년의 가슴에 안겼고 그녀의 눈물은 더욱더 뜨거워졌다.



해가 지자 소년과 소녀는 각자 집으로 향했다. 소년은 어둑해진 시골길을 걸었다. 갑자기 심장이 너무도 아려왔다. 그는 그녀와 재회한 소나무로 향했고 그 나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소년은 생각했다. 무언가 허무했다. 그녀에 대한 마음은 작별의 말없이 어느 순간 소년에게서 떠나버렸다. 소년은 애초에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심장의 저릿함이 잠잠해질 때 즈음 소년은 소녀와의 지난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 추억 속의 그들은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이미 그곳으로 돌아가기엔 그들은 너무 멀리 와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계곡에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계곡에서 물을 튀기며 놀고 있었고 나는 물가 옆에 앉아서 그런 그녀를 사랑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더없이 아름다웠고 그녀의 그 순간의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어느 정도 그렸지만 어떠한 화려한 색깔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나의 여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미 천국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그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를 손을 크게 흔들면서 나에게 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물을 튀기며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꿈이었다. 정말 달콤하고 설레는 꿈이었다. 순간 꿈과 현실의 온도 차는 몸이 시릴 만큼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그동안 했던 무심한 행동들이 너무나 미안했고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꿈속에 그림이 너무 생생해서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주 가던 오두막집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 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의 마음을 처음 앗아갈 때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녀에게 내 그림을 보여주자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를 덥석 안았다. 그녀는 아무 말없이 나에게 안겨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매일 설렘으로 가득 찼고 항상 숲 속과 계곡 주변을 거닐자고 했다. 그녀를 볼 때면 내 심장은 불규칙적으로 두근거렸다. 너무나도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 맴도는 모든 생각들을 그녀에게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그녀는 나의 얘기를 들으면 천천히 앞을 향해 걸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