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 소리를 내며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가운데 지석이 탄 여객선이 소를 닮은 작은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자욱한 안갯속에 쌓여있었다. 승객은 그와 젊은 여자, 단 둘 뿐이었다. 삐삐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오른쪽으로 갔고 그는 섬의 중심부를 향해 걸었다. 지석은 발걸음을 멈추고 멀어지는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1
좌우로 때리듯이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지석의 우산은 부서질 듯 휘청거렸다.
“이 양반아! 이 날씨에 이 섬에 와서 어쩌자는 겨?”
구멍가게 앞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는 지석을 향해 다짜고짜 소리쳤다.
“여행 왔어요. 2주 동안 휴가를 받았거든요.” 지석이 말했다.
“아니 날씨가 좋은 날 와여지. 이렇게 하늘에 구멍 뚫린 날 오면 자네도 고생이구 말이여. 우리도 고생한다니까.” 노인은 툭 튀어나온 입으로 침을 튀튀 튀며 말했다.
지석은 노인이 하는 말의 맥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조용히 있다 갈게요.” 지석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요즘 놈들은 말이야. 정신머리가 없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말이야.”
지석은 노인을 밭으로 밀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때 할머니 한 명이 문을 드르륵 열고 나와 잔소리를 하며 영감을 불러냈다. 그는 지석에서 삿대질과 욕지거리를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지석은 노인이 앉아있던 의자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가던 길을 향했다.
2
어둑어둑한 시골길이 이어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는 더욱 커졌다. 거센 바람으로 그의 우산은 뒤집혔다 펴지길 반복했다. 길 사이로 초록색 밭이 펼쳐졌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순간 번개가 반짝하더니 곧 무시무시한 천둥소리가 뒤를 이었다. 도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캐리어는 지석의 왼손에 의지해 앞으로 끌려갔다. 지석은 갑자기 바닷속에 온 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휙 하고 돌려 왼쪽 골목으로 향했다. 서풍이 불어 그의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했다.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그는 느낌에 의존해서 걸었다.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 등을 툭하고 쳤다. 깜짝 놀란 지석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어딜 가는 거야?” 그의 뒤에는 장대처럼 키가 큰 젊은 남자가 자그마한 우산을 쓴 채 서 있었다.
“누구세요?” 지석이 물었다.
“친구잖아.” 지석은 그를 골똘히 쳐다봤다.
“친구 누구?”
“어렸을 때 같이 놀았잖아. 기억 안 나?”
지석은 자세히 보니 그와 친구였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 가고 있어?” 친구가 말했다.
“바닷가.” 지석이 대답했다.
“내가 해변까지 데려다줄게. 넌 여행객이라 이곳에 안 익숙하잖아. 내가 여기 사는 만큼 친구에게 길안내를 해주는 건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해.” 친구가 말했다.
‘혼자 갈게. 같이 다니면 여행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거든.’라고 말하며 그를 당장 떼어내고 싶었지만 지석은 끝내 뱉지 못하고 “고마워.”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보일 적대감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길을 걷는 내내 친구는 온갖 쓸데없는 소리들을 웽웽거렸다. 지석이 길 양 옆에 있는 초록색 밭에 관심을 두면서 “응”, “어” 정도로 대답을 하면 친구는 신나서 우산을 잡고 있지 않은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중에 지석의 주의를 끌만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비와 바람소리에 그가 내는 소음이 분산돼서 다행이라고, 지석은 생각했다.
그들은 곧 해변에 도착했다. 바다는 안개에 가려있어 보이지 않았다. 또한 강한 비바람으로 그들의 우산은 이미 뒤집힌 지 오래였다. 지석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후하고 내뱉어서 바다 냄새에 집중했다.
친구가 어깨를 으쓱대며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얘기에 심취해있느라 해변에 도착한 것도 잊은 듯했다. 그저 지석이 가는 방향대로 이끌려 올뿐이었다.
밀물이 발 앞까지 닿아 두 사람의 신발이 조금 젖었다. 지석은 우산을 모래 속에 꽂아버렸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파도는 저 멀리서 높게 치솟아 그들을 잡아먹을 듯 다가와서 그들 가까이서 힘을 잃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지석은 한 걸음씩 물속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물이 바다 쪽으로 쭉 당겨졌다. 지석은 갑자기 바다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야. 너 어디가?”
친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미 멀어져 버린 지석을 보며 소리쳤다. 지석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파도를 향해 두 팔을 뻗으며 뛰어들었다. 파도는 마치 소용돌이치듯 그를 마구 흔들어 놓았다. 지석은 자연의 힘에 완전히 복종함으로써 궁극적인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완전한 고요 속에서 그는 문득 같이 배를 탔던 젊은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를 뻔히 쳐다보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