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두 번째 이야기

by 강숲




3


“키엑케엑”


지석이 기침하듯 물을 뱉어냈다. 햇볕이 그를 정면으로 쬐고 있었다. 그는 쇳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앉았다. 파도는 온데간데없고 바다에는 물결이 잔잔히 일고 있었다. 저 멀리서 새들이 끼룩끼룩 거리며 무리 지어 날고 있었다. 그는 키득키득 대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멀리서 아이들이 그를 보고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지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안도했다. 이제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자 물속에서 보았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 여자를 찾아야 돼.”

그는 먼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멀리서 아이들의 킥킥대는 소리가 더 커졌다. 그는 호흡을 깊게 들이쉬며 고개를 위로 돌려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들을 보았다. 그의 마음이 편해졌다.


햇빛에 반사된 해변이 반짝거렸고 파도는 아주 조금씩 생겼다 부서지기를 반복했다. 지석은 그녀를 찾기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음식점들 사이에 있는 골목길로 향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졌다. 그럴수록 지석의 눈꺼풀은 자꾸만 감겼다. 마침 멀리 나무로 된 낡고 작은 오두막집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캐리어를 질질 끌며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지석이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낡아있었다. 지석은 문을 똑똑하고 두드렸다. 아무런 소리가 없자 그는 고리를 밑으로 내렸다. 하지만 잠겨있는 듯 열리지 않았다. 지석은 문고리를 계속 흔들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안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마침내 문이 열렸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케케묵은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마루 전체가 짚 매트로 덮여있었다. 그 위에는 캔과 검은 봉지 그리고 휴지 등이 너부러져있었다. 지석은 캐리어를 구석에 밀어 넣고 매트 위에 쓰레기들은 치운 뒤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금세 골아떨어졌다. 문은 고정이 되지 않아 조금 열려 있었다. 그 틈 사이로 햇볕이 살짝 비췄다.



4


잠시 후 지석이 잠에서 깼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 바닥에 앉아 멍하니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문 밖에 서있는 것만 같은 환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대충 신발을 꾸겨 신고 캐리어를 챙겨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무도 없었다. 선선한 바람만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태양은 여전히 쨍쨍하게 섬 전체를 데우고 있었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석은 가만히 서 있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무작정 바다가 보이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두 갈림길에 마주했다. 한쪽은 섬과 이어져있었고 다른 쪽은 섬에서 혹처럼 튀어나온 길이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갓길로 들어섰다. 지석은 눈앞에 보이는 낮은 언덕을 걸었다. 그는 끝까지 올라가 바다 쪽을 시선을 내렸다. 수많은 검은 돌들이 파도에 부딪혀 반짝이고 있었다.


그 끝에는 긴 백발의 노인이 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앉아 있었다. 그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지석은 그에 대해 몹시 궁금해졌다. 언덕을 내려가 디딤돌들을 밟으며 그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지석은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커다란 돌 위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쭈뼛대지 말고 이리로 오게.” 노인의 말이 놀란 지석이 그의 옆으로 걸어갔다.


“낚시하세요?” 지석이 그의 옆에 있는 빈 통을 보며 말했다.


“그래. 저기 보이는 피라미들을 낚으려는 게 아닐세. 나와 친구가 될 녀석을 찾고 있다네.”


지석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자네, 지금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지?” 노인은 지석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지석은 당황했다.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 간파당하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자연에서 물은 언제나 출렁이지. 자네가 무엇을 좇든 그 대상이 영원히 같은 곳에 머무른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세. 떠오른 것은 반드시 가라앉지. 마찬가지로 가라앉은 것은 언제나 다시 떠오르기 마련이라네. 살아있다면 말일세.” 노인이 말했다.

지석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간 그의 막대기 끝에 있던 줄이 밑으로 푹하고 꺼졌다. 노인은 온 힘을 다해 당겼지만 좀처럼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석은 노인에게 다가가 긴 막대기를 같이 잡고 그와 함께 힘을 조금 뺐다가 다시 주기를 반복했다. 놈은 정말 끈질겼다. 그들이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씨름하다가 마침내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녀석은 양 팔을 쭉 뻗은 만큼 길었다. 매우 날렵하게 생겼으며 수면 위에 올라서도 족히 열 번은 몸을 비틀댈 만큼 힘이 장사였다. 하지만 결국 줄은 끊어졌고 그 물고기는 낚싯대에서 바다로 다시 떨어지고 말았다. 물속에서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다 먼 곳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저 놈은 반드시 다시 올 걸세. 녀석은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거야. 저 바닷속에는 그의 벗이 없는 것 같네. 그의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줄 다른 친구 말일세. 저렇게 강한 녀석일수록 무리 안에서 방황을 하기 마련이지. 그리고 결국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간다네. 다음번에는 혼자서도 충분히 저 녀석을 낚을 수 있을 거 같네. 지금처럼 강력하게 저항하지는 않을 테지.”


노인은 지석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런데 자네 가봐야 하지 않나?”

노인의 말이 맞았다. 그는 그녀를 찾아 나서야 했다. 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지석은 언덕 위에 너부러져 있던 캐리어를 다시 잡았다. 그는 뒤를 돌아 그 노인을 다시 한번 보았다. 사람이 거기에 있다기보다는 바위나 바람 그리고 바다처럼 자연풍경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