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by 강숲






정민은 입술을 꽉 깨물고 흐느꼈다.

“민혜가 어제 집에 찾아온 강도한테 칼에 찔려서 죽었데. 그리고 민혜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혼수상태 시래.”

그 말을 듣고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굉음이 내 귀를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웽웽거리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갑자기 머릿속에 전기 퓨즈가 픽하고 나가는 듯했다.



눈을 떴다. 나는 들판 한가운데 누워있었다. 하늘에는 구름들이 둥둥 떠있었다. 어디선가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마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것처럼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바람이 내 몸에 통과한다 싶을 정도로 시원하게 불어왔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이 보였다. 그 한가운데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었다. 그곳엔 노란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민혜가 우리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에게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당장 그녀를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거센 역풍이 나를 가로막았다. 달리고 달려도 결국 제자리였다. 있는 힘껏 소리를 쳐봤지만 바람에 막혀서 그녀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조급해졌다. 햇살이 그녀의 피아노를 환하게 비췄다. 더 이상 눈이 부셔서 그곳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나는 바람에 맞서 계속 달렸고, 계속 넘어졌다. 그녀를 눈앞에 두고도 닿을 수 없었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더니 그녀 쪽으로 내 몸을 밀어주었다. 나는 다시 희망을 되찾고 달렸다. 곧 들판 샛길까지 다다랐다.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은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조금씩 가까워졌다. 하지만 바람이 더욱더 거세게 휘몰아쳐 좌우로 나를 흔들어댔다. 드디어 그녀가 앉아있는 피아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발이 땅에서 붕 뜨기 시작했다.


내 몸은 변덕스러운 기류에 이끌려 하늘 위로 떠올랐다. 비닐봉지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나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이 그 흐름에 내맡겨졌다. 점점 그 피아노와 그녀가 작게 보였다. 나는 계속 흔들렸다. 이제는 그녀를 볼 수 있다는 희망조차 산산조각 나버렸다.




내가 눈을 뜬 곳은 양호실이었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고통으로 소용돌이쳤다. 할 수 있다면 내 심장에 송곳을 찔러 넣고 싶었다. 그래야만 그 괴로움이 잠잠해질 것 같았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쏟아져 베개를 흥건히 적셨다.

그때 양호선생님이 들어왔다.

“학생 괜찮아요? 민혜 양을 많이 좋아했나 보네요. 정말 슬플 거예요.”

“왜 하필 걔한테, 민혜한테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민혜는... 그 개새끼는 왜 하필...”

“저도 어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강도가 집에 쳐들어와서 그 학생을 찌르고 도망갔다니.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아까 전에 그 범인이 잡혔데요.”


“어떤 자식이에요? 대체 뭐하는 새끼예요?”

“민혜 아빠래요. 저도 아까 전에 나온 그 뉴스를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술을 엄청 마시고 들어와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 같아요.”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주변에 보이는 물건이 뭐든 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그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랐다. 꽉 쥔 주먹의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필요할 거예요.”

선생님은 그 말을 남기고 양호실 밖을 나갔다.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소리쳤다.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멍하니 벽장에 붙어 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일정한 속도로 초침이 움직였다. 오를 때도 다시 내려올 때도 똑같은 움직임을 유지했다. 다른 변화는 전혀 없었다. 계속 째깍째깍. 저 침은 정확히 30초가 지나면 맨 밑에 있을 것이며, 그다음 30초엔 맨 위에 있을 것이다. 확실했다. 저 시계의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고장 나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을 것이다.

순간 그녀에게 생긴 변화, 나에게 생긴 변화가 머릿속에 곡선처럼 그려졌다. 그것들은 서로 엉키고 엮이다가 다시 풀리고 섞이기를 반복했다. 하나의 작용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녀가 바로 앞에 펼쳐지고 휘몰아쳤다. 그녀의 상은 계속 변해갔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내 안에서 불확실하게 흐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양호선생님이 돌아왔다.

“학생, 이제 좀 진정된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죄송해요.” 나는 양손으로 이불을 붙잡으며 선생님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은 지금 이 상황이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고 화가 날 거예요.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저 떠난 그 아이를 마음에서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게 최선 아닐까요? 잊지 마세요. 기억하는 한 그 아이는 어떻게든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빠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세요. 용서하지 마세요. 하지만 복수하지도 마세요. 그러면 학생도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모든 수업 종이 다 울렸다. 나는 양호선생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교문을 벗어난 내 발걸음은 민혜 이모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은영도 와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혈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민혜 이모 말로는 경찰과 기자들이 이미 여러 번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봤다고 했다. 곧 민혜 이모의 남자 친구가 왔고 그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나와 은영, 단 둘만 남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곧 민혜 이모가 방에서 나왔다.

“너희 밥 안 먹었지? 지금 죽 배달시킬 건데 너희 것도 주문할게.”

은영과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먹어야 한다고 무작정 우리 음식까지 시켰다. 곧 음식이 도착했다. 소고기 죽이었다. 나는 죽 하나를 그녀 자리에 놔뒀다. 서로 말없이 식사를 했다.

“민혜랑...” 내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녀의 눈시울을 금세 붉어졌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민혜랑 어제 무슨 얘기했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 지금 말고 다음에, 괜찮아지면 말해줘.”

“악몽을 꿨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꿈속에서 네가 다짜고짜 민혜를 막 때리더래. 네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는데 네가 이렇게 말했대. ‘너 같은 년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볼 때마다 역겨워. 제발 좀 꺼져.’라고. 처음부터 혼자 잘 지내고 있는 사람한테 와서 수작을 걸더니 이제 자기 인생을 망쳐놨대.

민혜는 그때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어. 네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혼자 피아노가 있는 감옥에 갇혔대. 건반 하나를 칠 때마다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지다가 피가 나고 살이 부르트기 시작했대. 음악을 멈추려고 애를 썼지만 손이 말을 듣지가 않았대. 계속 아파하면서 피아노를 쳤다고 했어. 그러다 꿈에서 깼나 봐.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대.

네가 너무 미웠대. 그저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너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대. 민혜는 몸살이 났지만 약을 몇 알 삼키고 학교에 왔어.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봐.

민혜는 막상 교실에 도착하니까 네 눈을 쳐다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어. 점심시간 때 민혜가 너무 아프다는 거야. 그날이 엄마를 뵙는 날이라고 엄마한테 전화를 해달라고 했어. 곧 민혜 어머니가 학교에 도착하셔서 민혜를 데리고 가셨어.”

은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훌쩍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민혜에게 내 마지막 이미지는 두려움과 공포였다. 당장 토를 할 것만 같았다. 너무 괴로웠다. 사과를 할 수도 없었다. 위로해줄 수도 없었다. 나에겐 더 이상 변명의 기회조차 없었다. 그녀가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