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사귄 인생친구에 관하여
어렸을 땐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국 사람을 마주치는 게 반갑지 않았다. 외국으로까지 가서 여행을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 이국적인 것들을 것들을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한국 땅에서 매일 보는 옷차림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국적인 풍경을 그들이 망치고 있다고 (감히) 투정했던 것 같다.
난 낯선 문화 속에서 고향과 비슷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깔끔하게 잊는 게 좋았다. 그래서 관광지가 되었든 식당이 되었든 그곳에 한국 사람들이 있으면 괜히 일부러 안 쳐다보거나, 다른 곳으로 가거나, 더 희소한 곳을 찾아 자리를 뜨는 것과 같은 유치한 행동들을 했다. 외국인들과는 숨 쉬듯이 스몰톡을 하면서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괜스레 경쟁의식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내 특별한 여행이 어쩐지 그들 때문에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자의식 가득한 거만한 생각인지, 지금 와서 떠올리면 부끄럽기만 하다.
한 번은 유럽 여행 중 한 쌍의 한국인 여성과 남성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들려오는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았을 때 두 사람은 여행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 서로를 만난 듯싶었다. 두 명 이상이어야 입장할 수 있는 명소나 식당 같은 곳을 이용하기 위해 혼자 여행 중인 사람들이 종종, “같이 ㅇㅇ 가실 분?” 하고 동행을 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튼 해 질 녘 전망대에서 가깝게 붙어 이야기를 나누는 퍽 낭만적인 커플의 모습이었을텐데, 그때 내 눈엔 그들이 왜 그렇게 별로였던 건지 모르겠다. 돌이켜보건대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의문은, ‘굳이 해외여행까지 와서 왜 한국인들이랑 어울리지?’, ‘연애하려고 여행 왔나?’ 등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고 경험의 겹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외국에선 한국인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그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진짜 좋은 인연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였던 것 같다. 오래된 친구라고 해서 꼭 나와 마음을 깊이 나누는 것도 아니고,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라고 해서 깊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는 걸 배운 뒤였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친구가 꼭 예상한 곳에만 있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난 후였다.
“대학 친구들은 앞에서는 착해도 다 가면 쓰고 있어. 진짜 친구 사귀는 건 중고등학교 때까지더라.”라는 말을 마냥 믿고 마음을 닫았다면 내 영혼의 단짝을 만나지 못했을 거였고, “일터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다 가식적이야. 그 사람들한테 속얘기 하면 안 된다? 다 너한테 화살로 돌아가.”라는 말을 덜컥 받아들였다면 소중한 언니들과 친구들을 얻을 기회를 놓쳤을 터였다.
마음을 완전히 닫아 놓지만 않는다면, 예상하지 못한 때와 장소에서 좋은 사람을 사귀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앎을 기점으로는 여행 중 한국 사람을 마주치게 되더라도 예전만큼의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뉴욕 호스텔 방에 새로 들어온 동양인 여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속으로 내심 ‘아,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온 “I’m from South Korea.”에 대뜸 반가워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현아. 난 초면이지만 현아에게 루이스 사건(‘3. 루이스, 너 부자야?’ 참고)에 대해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했다. 현아는 친절하게 내 고민을 들어줬다. 그러던 중 나와는 이미 몇 번 대화를 나눈 같은 방 프랑스 언니가 귀가해 셋이서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우린 며칠 뒤에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 함께 가자고 약속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911 메모리얼에서 만나는 날이 되었는데, 라일라 언니는 그만 핸드폰 데이터가 안 되는 상태로 길을 잃는 바람에 현아와 나 둘이서만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그게 내 미국 여행에서 가장 좋은 일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 교환학생을 마치고 여행 중인 현아는 신중하면서 해맑고, 어른스럽다가도 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 친구였다. 호스텔 방에서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부드럽고 둥글둥글한 현아의 음성이 난 어딘가 좋았다. 믿음직스럽고 거짓이 없을 것만 같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에 관한 고민을 들어주던 그 진중한 태도와, 간혹 라일라 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천천히 설명해 주던 것, 과한 리액션 없이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던 눈빛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911 박물관에서도 현아는 굉장히 뜸을 들여, 오랫동안, 공들여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사유했다. 그 태도 하나로도 매력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했다.
그날 이후로 우린 현아가 뉴욕을 떠나던 날까지 세 번이나 더 만났다. 유명한 스테이크집에 가고, 주말에 열리는 마켓에 놀러 가 이것저것 사 먹고, 우드버리에 가서 쇼핑도 했다. 또, 브루클린 공원에 오래 앉아 이야기도 하고, 첼시마켓을 나오는 길 운 좋게 노을을 발견해 사진을 찍고, 걸어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기도 했다.
난 마치 현아가 원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졌다. 우린 꿈에 대해, 살고 싶은 방식에 대해, 요즘 하는 고민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어떤 점이 만족스럽고 어떤 점이 못마땅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종류의 일기를 쓰는지, 글을 쓰는 게 왜 치유가 된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운동의 중요성과 좋은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 인상 깊은 강연의 내용, 좋아하는 음악, 우리가 평화롭고 온전한 존재라는 깨달음 같은 것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그럴 때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대화의 내용도 그렇지만, 난 현아가 말하는 방식이 좋았다.
“언니, 내가 클라이밍이 좋은 이유는…… 언니도 테니스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
“언니가 방금 한 말과 비슷한 생각을 나도 요즘 하고 있었어.”
“언니의 말을 들으니까 내가 지난 학기에 들은 철학 수업이 생각났어. 그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
살면서 겪는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래서 나름의 어떤 깨우침을 얻는다는 게 나와 닮은 점이라고 생각했다. 현아는 단순한 사건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 줄 알고, 삶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생각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굳게 믿고,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절로 에너지가 생기곤 한다.
우린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는 현아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현아야, 너는 꾸준한 편이야?”
그때 당시 내 화두는 ‘꾸준함’이었는데, 그건 내가 스스로 꾸준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현아는,
“난 꾸준히 하는 것에 자신이 있는 편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면 내가 어떤 건 꾸준히 하지 못하는지도 모르는데, 꾸준히 했던 몇 가지에 집중해서 난 꾸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 언니도 언니가 꾸준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꾸준하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꾸준히 하는 것들이 정말 없지 않았다. 영어 공부, 여행, 책 읽기, 글쓰기, 스트레칭, 산책 같은 것들.. 찾아보니 꽤나 많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지혜롭고 현명한지.
내가 현아의 음성과 말투를 칭찬했을 때에도 현아는,
“언니가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는 사람인 것 같아.”
라고 답하며 칭찬을 다시 칭찬으로 돌려주었다. 칭찬을 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멋쩍어지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다.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가 궁금해지게 했다.
“현아야 넌 어떤 집에 살고 싶어?”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일단 나는 집 앞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고, 공원은 꼭 세 개가 있어야 해!”라고 답하는 아이.
그럼 난 고개를 백 번 끄덕이고 한 마디 덧붙인다.
“맞아, 그리고 근처에 수영장도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사람이 있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 결이 비슷한 사람. 그런 사람을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현아와 있을 때의 나는 늘 웃고 있었던 것 같다. ‘행복하다, 너무 좋다’라는 말을 계속 입에 달고 있었다. 그 말들 중 진심이 아니었던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어느덧 현아가 뉴욕을 떠나는 날이 왔다. 우린 마지막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브런치 카페에서 만났다. 감기 기운이 있다는 말에 나는 감기약만을 챙겨 왔을 뿐인데, 현아는 마지막 날이라고 엽서 한 장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산 작은 네잎클로버 배지를 가져왔다. 엽서의 뒷면에 적힌 편지를 여러 번 곱씹어 읽으며 마음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여행하다 보면 언니가 뜻한 대로 풀리지 않는 날들도 있겠지만 언니라면 그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만족할 수 있으리라 믿어. 육신이 어디에 있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마음가짐이니까!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항상 언니의 편일 거야. 여행하다가 보고 듣고 경험한 걸 문득 나누고 싶어지면 언제든 연락 줘. 환영이야. - 현아가, 뉴욕에서 2023.05.30.”
2023년의 나의 모든 여행이 끝나고, 16개월이 지난 시점인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16개월 동안 우린 서로가 사는 지역에 놀러 가 서로의 집에서 얹혀 자고, 즉흥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몇 달째 매주 화상으로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오늘은 어떤 글을 썼는지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을 듣게 되는데, 말미엔 항상
“역시 언니(너)랑 이야기하는 건 너무 좋아. 생각이 명쾌해져.”라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여행 때보다 더 깊은 대화를 우린 여전히 많이 나누는 중이다. 난 2023년에 가장 잘한 일을, ‘하이 뉴욕 호스텔’에서 한국인 여자애한테 말을 건 일이라고 늘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