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매력
처음으로 호스텔에서 잔 건 스물한 살 스페인 여행 때였다. 기숙사 생활도 해 본 적이 없던 나에겐 모르는 사람들과 방을 나눠 쓰고 화장실과 냉장고 같은 걸 다 공유한다는 게 약간 낯선 일이었다. 함께 여행한 대학교 친구 민주도 그런 경험이 없는 건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린 숙박비도 절약하고 새로운 경험도 해보자며 과감하게 호스텔 예약 창을 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우당탕탕이었다. 여성 전용 4인실인 줄 알고 예약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남녀 혼성이었던 것이다. 그 작은 방에서 민주와 나, 그리고 멕시코 남자 둘이서 한 뼘짜리 공간을 사이에 두고 생활해야 했다. 침대에 칸막이나 커튼도 없었다. 이후에 이용해 본 다른 호스텔들은 실내가 넓거나 커튼이 있어서 혼성일지라도 커다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처음 묵은 그 호스텔 방은 너무 작아 서로 지나치게 가까웠다. 당연히 생활하는 게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꼼꼼하게 보지 않은 우리의 실수인 것을.
그래도 그 멕시코 사람들과 서툰 영어 실력으로 이야기를 나눈 건 좋은 경험이었다. 공교롭게도 맵부심이 있는 두 나라의 사람들이 만났기 때문에 장난스레 서로 매움 경쟁을 했는데, 우린 불닭볶음면이라는 짱! 매운 라면이 캐리어에 있다며 초등학생처럼 으스댔다.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하면 웃기다.
예약 실수 외에도 많은 것이 우당탕탕이었다. 방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모르고 공용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가 호스텔 주인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고, 옷을 갈아입는데 사람이 들어와 화들짝 놀라며 몸을 가린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같은 방 멕시코 친구들이 “오늘 저녁에 호스텔 사람들이랑 다 같이 놀러 나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물었는데, 그저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휘저은 뒤 ‘아.. 우리 왜 안 따라갔지?’ 하며 후회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회상하면 그 소심함마저도 귀엽게 느껴질 뿐이지만.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호스텔에서 지내는 게 익숙하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기 전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도,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작은 침대의 한구석에 소지품을 가지런히 놓아두는 것도 이젠 더 이상 어색하거나 낯선 일이 아니게 됐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불편함은 익숙해지기도 했다. 캐리어를 침대 밑에 욱여넣는 것 같은 불편함이 그중 하나다. 방 면적이 넓은 호스텔이라면 캐리어를 침대 옆 바닥에 펼쳐 놓을 수 있지만, 만약 방이 좁다면 사람들이 통행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침대 밑에 넣거나 한쪽 구석에 세워 두어야 해서 생기는 일이다. 짐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거나 열고 닫는 게 성가신 일이기 때문에, 어쩌다 소지품을 꺼낼 일이 생기면 머릿속으로 필요한 걸 죄다 생각해 한꺼번에 최대한 많이 꺼내고는 했다. 마치 집순이 집돌이들이 어쩌다 한 번씩 밖에 나갈 일이 생기면 모든 볼 일을 하루에 다 끝내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이층 침대를 같이 쓰는 사람이 잘 때 뒤척임이 심하다면 그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내 침대까지도 사방으로 흔들리게 되는 불편함도 있다. 나는 잘 때 잘 안 깨는 편인데도, 어떤 호스텔에서는 위층 사람이 몸을 뒤집을 때마다 번쩍번쩍 눈이 떠진 날도 있었다(물론 침대가 튼튼하지 않을 때만 그렇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간혹 새벽에 돌아다니는 룸메이트들로 인해 수면 안대나 귀마개가 필요한 밤도 있고, 침대의 1층과 2층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 허리를 온전히 펴고는 침대에 앉을 수 없었던 최악의 곳도 있었다. 모두들 외출 준비를 하는 아침 시간에 욕실을 사용하기 위해 약간의 눈치 게임을 하는 건 일상이다. 가장 먼저 일어나 곧장 욕실로 들어가야 여유로운 샤워를 할 수 있는데, 어중간하게 기상해 이미 누군가 사용하고 있다면 ‘다음은 제가 이용할게요’라는 제스처(ex. 샤워 용품 챙기며 부스럭거리기)로 찜을 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그렇게 신경 쓸 게 많은 호스텔을 굳이 왜 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호스텔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그럼에도 호스텔이 매력 있다고 느낀다. 아니, 오히려 불편함 그 자체가 매력이기도 하다.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호스텔은 여행과 비슷하다. 누가 시켜서 호스텔에서 묵는 것도, 누가 시켜서 여행하는 것도 아니므로, 둘 다 ‘구태여’ 개고생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고백하자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를 때나 비좁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때, 혹은 낯선 이의 코골이에 잠에서 깰 때엔 안락하고 넉넉한 나의 집과 쾌적하게 혼자 쓰는 호텔 방을 떠올렸다. 유독 고단한 날엔 ‘하.. 내가 뭐 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 불편함과 낑낑거림, 낯선 이와 부대끼며 서로의 체취를 맡던 일들이 희한하게 기억에 오랫동안 남게 된다. 화려하고 청결한 호텔 방은 여기가 어디였는지, 이 도시인지 저 도시인지조차 금방 가물가물해진다. 그래서 자꾸만 호스텔이 내 마음을 이끄는 듯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기억에서 오래 살아남는 승자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왜냐하면 호스텔이 여행자에게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려 애쓰며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 무렵 여행자들로만 이루어진 그 공간에 들어선다. 하루 끝의 호스텔 공용 공간은 조금은 지치지만 어딘가 들뜬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맥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내일 일정을 조율하거나.
그 사람들 틈에 있다 보면 이들이 내가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어떤 편안함과 안정감이 생기는 걸 느끼곤 했다. 나처럼 여행을 하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하루를 보냈을 사람들만 있는 곳, 모두 다른 인종 혹은 다른 문화권이지만 실은 누구도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곳. 호스텔은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동질감과 소속감,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안도감이다. 그래서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단 며칠이라도 꼭 호스텔에 묵고 싶어 지는 것 같다.
여행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말을 걸기가 쉬워지는 공간, 오늘 구경한 곳에 대해 떠들다가 갑자기 삶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마저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 주인을 잃은 채 하루가 넘게 욕실에 남겨진 물건에 아무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공간, 남에게 선뜻 물건을 빌려주고서 같은 여행자에게 도움이 되어 기쁘다고 생각하게 되는 공간.
그 이상하고도 특별한 공간을, 나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