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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Leaver Nov 21. 2024

“마음껏 먹어도 돼 “

- 체코가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신중하게 오랫동안 생각할 것 같지만, 때로는 아주 작은 정보나 단편적인 이미지만으로도 결정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체코에 가야겠다고 결정한 건 세계여행을 하는 어느 부부의 영상 때문이었다. 체코의 물가가 저렴한 편이고, 특히 맥주가 저렴하고 맛있다는 그들의 말이 내가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선택한 계기가 되었다. 악명 높은 뉴욕의 물가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여행 후반부에 보상받고 싶었다. 그리고 한 번 가본 나라이기 때문에 관광에 대한 강박 없이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획했던 것처럼 실제로 프라하에 가서는 먹고 마시고 쉬는 것에 열정을 쏟았다.




사실 여행하는 동안에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맛있고 유명하다는 음식들은 거의 다 먹어봤지만, 귀찮아서 거르거나 젤리로 대충 끼니를 때운 날도 많았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나 현지인들에게 추천받은 곳이 맛이 좋은 경우엔 기분이 정말 좋았지만, 평범한 식사를 한 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불쾌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5주를 오롯이 혼자 있어 보니까 나에게 미식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먹고 다니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다이어트였다. 내 인생에서 다이어트는 스무 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난 먹는 만큼 살이 찌는 체질이지만, 살찌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이십 대 내내 늘 마음 편히 먹지 못했고, 살찔까 봐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은 적도 많았다. 여행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던 것 같다. 미식에 대한 흥미가 적은 편이기도 했지만 몸이 불어나는 게 싫어서 적당히 먹었다.




그런데 체코에선 그런 강박 없이 최대한 먹고 싶은 만큼 사리지 않고 먹었다. 물론 여전히 먹은 만큼 움직이자는 마음으로 많이 걷기도 했다. 돼지 앞다리살 요리 꼴레뇨, 소고기 스튜 굴라시, 꽈배기 모양의 빵 안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먹는 뜨르들로 등을 먹었다. 그리고 매 끼니마다 맥주는 빠지지 않았다. 하루는 한적한 시간의 식당에 들어가 소고기 타르타르에 커다란 흑맥주를 세 잔이나 마셨다. 며칠 동안 고기 위주의 식사에 늘 술을 곁들이면서 내가 좀 원시적이고 원초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그 풀어짐과 헤성함이 나름대로 재밌었다. 몸은 담백한 음식과 채소를 갈망했지만 평생이 아닌 단 며칠의 기름진 식사 정도는 나를 망치지 않을 것 같았다. 먹는 여행의 즐거움을 살짝 느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여행이 체형에 대한 나의 강박을 다시금 확인하게끔 했던 것 같다. 건강한 신체를 추구하는 듯하지만 사실 난 마름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다. 중학생 때까진 내 신체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살이 찌기 시작한 뒤 내 체형의 단점들을 속속들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되는 마른 연예인들과 나의 체형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극단적으로 절제하다가 결국 식욕이 터져서 무분별하게 먹고, 괴로워하고, 강박적으로 몸을 체크했던 그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내 체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인생의 숙제 중 하나가 되었다. 잘생길 필요도 날씬할 필요도 없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게, 그래서 그것에 집착할 에너지를 더 좋은 곳에 사용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그래서 체코는 나에게 묘하다. 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했던 몇 안 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그곳에 있었을 땐 다시 체코에 갈 일은 더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온 뒤 회상하는 체코는 조금 묘하다. 왠지 다시 가고 싶어질 것 같다. 다시 가도 같은 느낌일 것만 같다. 언제 가더라도 나에게 “마음껏 먹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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